
돈이 없다는 사실이 언제부터 부끄러워졌을까. 어릴 땐 단지 ‘가지고 싶은 걸 못 가지는 것’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존심까지 깎이는 기분이 든다.
특히 다음과 같은 순간엔, 가난이 단순한 현실을 넘어 수치처럼 느껴진다.

1. 계산할 때 주저하게 될 때
계산서를 앞에 두고 눈치 보게 되는 순간, 돈이 없다는 사실이 타인에게까지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도 더치페이를 제안하기 어렵고, 혹시라도 내가 낸 금액이 적을까 봐 신경 쓰인다. 돈보다 관계가 더 신경 쓰이는데, 그게 더 서글프다.

2. 누군가 여행 얘기를 꺼낼 때
친구들이 해외여행이나 호텔 얘기를 할 때, 나는 조용히 웃고만 있는다. 가고 싶지만 못 간다는 말이 괜히 자존심 상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것도 점점 어려워진다.
돈 없는 게 주눅이 되는 건, 비교가 시작될 때부터다.

3. 격식 있는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같은 자리에 불쑥 초대받으면 축하보다 먼저 걱정이 앞선다. 마음은 있지만,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진심보다 돈이 먼저인 분위기 속에서, 가난은 슬며시 죄책감처럼 느껴진다.

4.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걸 못 해줄 때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만큼은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늘 계획보다 부족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아이는 아무 말 없어도, 내가 괜히 더 작아진다. 돈이 없다는 게 가장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돈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때로 그 사실을 부끄럽게 만든다. 비교가 많아지고, 체면이 중요해질수록 마음의 짐은 더 커진다.
진짜 수치는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숨기려다 자신을 잃어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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