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 들수록 알게 된다. 내가 지나온 환경이 내 성격과 감정, 소비 습관까지 얼마나 깊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특히 평범한 일상에서, 문득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그 기억은 오래전 일이지만,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누른다.

1. 계산대 앞에서 가격을 다시 확인할 때
필요한 물건인데도 손에 들고 망설이게 될 때,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이건 사지 말랬었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뺐던 어린 시절의 습관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2. 누군가 ‘어릴 때 외식 많이 했겠다’고 말할 때
어릴 때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가능한 이벤트였다. 친구가 말한 당연한 기억이 나에겐 낯설고, 갑자기 어릴 적 간식 하나로 하루를 버텼던 날이 떠오른다. 같은 세상을 살아왔지만, 기억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3. 브랜드를 묻는 질문을 들었을 때
옷차림이나 소지품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 브랜드를 묻는 말에 움찔하게 된다. 누군가는 별 뜻 없이 물은 말이겠지만, 어릴 적 늘 ‘없는 집’이라는 생각에 움츠러들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4.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괜히 불안해질 때
어릴 때 부모가 모두 일하러 나가고 혼자 남겨졌던 기억이 몸에 각인되어 있다. 지금은 혼자여도 괜찮은데도, 문득 정적이 두려워지고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린 날의 외로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가난했던 과거는 단순히 돈이 없던 시절이 아니라, ‘결핍의 감정’이 스며든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말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조용히 떠올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행동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결핍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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