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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사선 20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배 하나 없어서 빌려 탔다는 한국 연구소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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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코리아의 성장기” – 남극에서 빌려타던 나라, 쇄빙선 ‘아라온’으로 남극을 열다

남극 연구의 서막과 첫걸음의 설움

1988년, 대한민국이 남극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우면서 세계 20개 극지연구국 대열에 합류한 것은 그 자체로 큰 업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오래도록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연구용 쇄빙연구선, 즉 두꺼운 바다 빙판을 직접 부수고 나아가는 특수선이 없던 것이다. 당시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노르웨이, 중국, 일본 등 ‘극지 강국’들은 자체 쇄빙선을 보유해 자유롭게 남극 해빙을 누비고 있었다. 반면 대한민국과 폴란드만 쇄빙선 없이, 남극 해빙의 두께와 변덕스러운 기후 앞에서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절실했던 쇄빙선의 부재

남극 연구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다. 겨울철 바다의 얼음판 두께는 수 미터에 이르고, 태풍급 바람과 눈보라까지 겹치면 해상 이동은 본질적으로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배 한 척이 없던 한국 극지연구진은 현장 연구 때마다 외국 쇄빙선을 빌려 타야 했고, 아예 타국 조사단의 일정에 맞춰 조금씩 끼워달라고 직접 부탁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긴급 상황이나 장비 수송, 대규모 연구가 필요할 때마다 장비 수송부터 연구자 이동까지 온갖 차질이 빚어졌다. 심지어 해마다 연구 시즌이 오면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 “올해도 좀 태워달라”고 위성전화, 팩스, 이메일로 절실한 협조 요청을 해야만 했다.


뼈아픈 교훈 – 위기와 희생, 그리고 쇄빙선 건조 결의

유독 뼈아팠던 사건이 2003년에 터졌다. 남극 세종기지 인근에서 야외탐사를 벌이던 한국 연구원이 조난당해 끝내 순직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거센 눈보라에 고립된 대원을 구조하러 딱히 쓸 만한 지원선이나 장비가 없었고, 외국 지원팀 도움에만 의존해야 했다. 이 비극은 쇄빙연구선 보유의 필요성을 한국 사회와 정부가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조선강국 대한민국이 배 하나 없어…”의 자조

대한민국은 조선(배 만들기) 분야에서 세계 1위라 불릴 만큼 기술력이 높았으나, 정작 남극 연구 무대에서는 ‘배 없는 나라’로 꼽혔다. 그로 인해 연구 진출 초창기엔 “세계 조선강국이 남극에선 배가 없어 빌려 다닌다”는 자조와 비판, 그리고 일종의 국가적 열등감까지 겹쳐 있었다.


수십 년 빈자리 채운 ‘극지 쇄빙연구선, 아라온’의 탄생

2009년,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이 건조돼 극한의 바다로 진입했다. 아라온(ARAON)은 해빙 두께 1미터가 넘는 남극 바다에서도 자체 진입·탈출이 가능한 최첨단 설계를 자랑했다. 전장 111m에 승선 연구원·승무원 총 85명, 실험실·관측장비·소형 헬기까지 갖췄으며, 연료와 식량을 만재하면 최대 70일간 무기항 항해가 가능하다.

아라온호는 투입 즉시 남극과 북극 양극을 오가며 한겨울 바다 빙판, 빙붕, 만년설을 누비며 대한민국 극지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빌려 타던 나라’에서 남극의 산타로

① 국내외 연구의 지위 급상승

아라온호 투입 이후, 대한민국은 남극 세종기지(1988년 개소)에 이어 장보고기지(2014년)까지 건립해, 남극과 북극 양극을 자유롭게 오가며 세계적 연구 거점 국가로 부상했다. 단지 연구 장비를 실어나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대륙빙하·빙붕 탐사, 해양생물의 장기 변화 관측, 기후변동·해빙의 메커니즘 규명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형 빙붕 붕괴 메커니즘, 남극의 빙하기–간빙기 순환 데이터, 북극권 대형 빙산 이동 경로 해석, 극지 생태계 환경 DNA 분석 등 수차례 세계 최초, 최상위권 논문이 쏟아졌다.

② 국제협력과 구조활동 – ‘남극의 산타’란 별명

아라온호는 단순히 대한민국만의 연구선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남극 바다 한복판에서 좌초하거나 조난당한 해외 연구팀, 실신·응급환자 구조 요청이 잇따르면, 곧장 출동해 인명 구조에 앞장섰다. 실제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등 여러 나라 조사단의 구조 의뢰에 응답해 성공적으로 인력을 구출하는가 하면, 2015년과 2019년에는 대한민국 원양어선 선원들이 남극 해상에서 조난·고립됐을 때 구조 주역이 되어 ‘극지의 산타’란 별칭을 얻었다.

해외 언론과 극지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제 남극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한국을 찾으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국제 신뢰와 위상이 높아졌다.

③ 아라온호의 사회·과학적 영향

  • 대한민국이 단독, 혹은 다국적 연구 진두지휘
  • 원양어업 및 해양자원 개발 지원
  • 해상 기상 데이터 누적 및 재해·기후변화 대응 연구 확대
  • 극지 인명구조–비상대응 선진 시스템 구축

“대한민국, 남극을 빌려타던 조직에서 지구 극지의 희망을 쥐다”

빌려타던 나라에서 아라온호를 운용하는 연구강국이 된 이 30년의 여정은, 단순한 과학기술 진일보가 아니라 국가 위상, 국제협력, 그리고 생명·기후 미래에 대한 집단적 성찰이 낳은 결과였다. 한때 쇄빙선이 없어 극지의 문턱도 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남극과 북극에서 인류 모두의 ‘공생’을 선도하고 멀리 미래 극지 탐사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극한 환경 극복을 위한 과학도전, 국제사회에 대한 연대와 도움, 미래 지구의 변화를 준비하는 노력이 씨줄·날줄처럼 얽혀, 극지 코리아는 이제 “남극 바람결에 대한민국이 선다”는, 작지만 강인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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