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사회가 또 한 번 간첩 사건으로 크게 뒤흔들렸다. 이번엔 단순한 군사 기밀 유출을 넘어 유명 연예인의 친동생까지 간첩 조직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며, 정치·군사·사회 전반에 걸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보 기관이 자금을 이용해 대만 사회 각계 인사를 조직적으로 포섭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현실화되면서, 대만 정부의 정보보안 체계에도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디아볼로 코치의 정체…간첩 거점이 된 타이베이
사건의 중심에는 전직 디아볼로 코치이자 디아볼로연맹 상무이사였던 루지셴이 있다. 그는 2020년 공연을 명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현지 정보 요원에 포섭되었고, 이후 간첩 활동을 위한 자금을 중국 국적의 아내 명의로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령한 금액은 총 570만 대만달러, 한화 약 2억6천만 원에 달한다. 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타이베이 시내에 아파트를 임대해 거점으로 삼고, 군 출신 인사들과 현역 군인을 끌어들여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조직망을 구축하려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징역 10년 6개월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여배우 동생의 가담…대중적 충격 가중
이번 사건을 더욱 충격적으로 만든 건 공범 중 한 명이 대만의 유명 여배우 궈슈야오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이다.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궈슈야오는 한때 한국 걸그룹 ‘카라’의 히트곡 ‘허니’를 대만에서 리메이크해 부르며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드라마와 광고, 예능 프로그램 MC로도 활약해왔다. 동생 궈보팅은 간첩 조직 자금 전달 역할을 맡았고, 징역 3년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궈슈야오는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동생과의 연관성을 부인했고, 이후 “모든 것은 당국에 맡기겠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지만, 유명인의 가족이 연루되면서 사건의 여파는 연예계까지 확산되었다.

간첩 조직의 작전 방식…’중국식 침투’의 실체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중국은 과거부터 자금, 직위, 관계망을 이용해 대만 내부의 군·정·사회를 침투해 왔고,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이다. 루지셴은 공연 전문가라는 표면적 신분을 이용해 자유롭게 중국을 드나들며 정보원과 접촉했고, 은밀히 자금을 전달받은 뒤 실질적 간첩 네트워크 구축에 착수했다. 특히 그가 동원한 대상은 군사기밀 접근이 가능한 현역 및 예비역 군인들이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무력 침공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전쟁 발발 시 내통 및 시설 교란 등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내 간첩 사건, 왜 잇따르고 있나
이번 사건은 단발적 사례가 아니다. 이미 2023년에도 중국 자금을 받고 전쟁 시 중국군에 투항하겠다고 서약한 대만 육군 장교가 적발돼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퇴역 장성들을 포함한 조직이 대만군 주요시설을 공격하거나 항복 문서를 작성하는 등의 임무를 부여받고 준비 중인 것이 발각돼 징역 3년 6개월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군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중국의 침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여당인 민진당과 야당인 국민당을 가리지 않고 과거 보좌관, 의원 보좌진, 지역 조직책 등이 포섭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간첩 활동은 정당, 직업, 연령, 지역을 초월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다.

정보보안 경계령…“보이는 적보다 내부 적이 더 무섭다”
대만 사회는 이미 중국의 직접적인 침공 위협 아래 놓여 있다. 중국군의 항공기와 함정이 매일같이 대만 주변을 압박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과 정보 공작 또한 일상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내부의 ‘보이지 않는 적’이다. 간첩 활동은 대만 내부의 사회 신뢰망을 파괴하고, 전시에 결속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연예인 가족이 가담한 이번 사건처럼 일반 국민의 삶 깊숙한 곳까지 중국의 영향력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은 대만 사회에 깊은 불안감을 안기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군 내부뿐 아니라 일반 사회 조직, 민간단체, 심지어 언론과 연예계까지 정보보안 교육을 확대하고, 배후 감시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중국식 하이브리드 전쟁의 현실
중국의 간첩 활동은 단순한 정보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중국이 군사적 충돌 없이 대만 내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이버전, 정보전, 여론 공작, 자금 침투 등을 통해 대만의 전략적 의사결정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며, 이는 곧 무력 침공 이전에 내부 저항을 줄이고, 사회 혼란을 유도하는 전술이다. 실제로 간첩 조직이 노린 정보 중에는 부대 이동, 군 통신 시스템, 전시 대응 매뉴얼 등 핵심 전략자료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스파이 사건이 아닌,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체계적 침투 전술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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