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구형 T-72 전차를 무인 전차로 개조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3년 반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11,000대 이상의 전차를 상실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차는 더 이상 전차전의 주력 무기가 아닌, 드론과 지뢰밭을 돌파하기 위한 ‘총알받이’에 가까운 역할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구형 T-72 전차를 무인화하여 새로운 형태의 ‘로봇 전차’를 실전에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 국영 방산기업 우랄바곤자보드는 2025년 7월 27일, T-72 전차를 기반으로 한 무인 전차 시스템 ‘슈트룸’을 개발했다고 발표하며, 이 시스템이 곧 전장에 배치될 예정임을 밝혔다.

슈트룸 시스템의 구조와 구성
슈트룸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구성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무인 전차, 두 번째는 이를 통제하는 지휘 전차다. 무인 전차는 단축형 125mm 활강포와 22발의 포탄, 그리고 7.62mm 동축 기관총을 탑재하고 있으며, 포탑과 조종 장치를 자동화하여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도 작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흥미로운 점은 전차포의 길이를 짧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는 원격으로 조종되는 상황에서 장애물에 걸릴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152mm 단축형 주포를 탑재한 돌격포형 파생 모델도 개발 중이다.

지휘 차량의 한계와 비효율성
지휘 차량은 T-72 또는 T-90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하며, 내부에 로봇 조작 요원이 탑승하여 반경 3km 이내의 무인 전차를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콘솔을 장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지휘 차량이 오직 ‘무인 전차 1대’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인 시스템은 1대의 지휘 차량이 복수의 로봇 유닛을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슈트룸은 1:1 구조로 개발되었다. 이는 작전 효율성과 자원 소모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형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장에서의 목적과 활용 가능성
러시아는 슈트룸 시스템을 요새화된 진지 돌파, 시가전, 지뢰밭 정찰 등 위험 지역에 투입함으로써 병사의 생명을 보호하고 돌파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개발했다. 무인 전차가 먼저 진입해 지뢰를 밟아 폭발을 유도하거나, 참호와 방어선을 붕괴시키는 전초 병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전차전이 드물어진 현대 전장에서 전차는 무인 정찰 드론과 함께 소모전의 도구로 전환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로봇 전차의 역할은 새로운 전술적 실험이 될 수 있다.

급조된 구조와 생존성 한계
지휘 차량 외관에는 최소 9개의 대형 안테나가 장착돼 있다. 이는 전차를 원격 조종하기 위한 핵심 장비지만, 외부로 돌출된 구조는 생존성에 큰 약점이 된다. 기관총이나 파편 공격만으로도 손쉽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급조된 설계 탓에 통신 장비를 차체에 내장하지 못하고 외부에 부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보관소에 적재된 구형 전차를 빠르게 개조하여 배치하고 있으며, 예산 절감과 시간 단축을 위해 완성도보다는 실전 배치를 우선시한 형태다.

로봇 전차의 가능성과 한계
슈트룸은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되는 로봇 전차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1대의 지휘 차량이 1대의 무인 전차만 조종할 수 있다는 구조, 외부로 노출된 통신 장비의 취약성, 낮은 포구 초속으로 인한 화력 제한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전시 상황에서 병력 손실을 줄이고 기계화 전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이 로봇 전차가 실제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또 세계 각국이 이에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는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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