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복 입고 퇴근, 강물 따라 흘러 집으로”…유럽 직장인들의 현실 낭만, 그곳의 진짜 정체
‘퇴근 러시’ 대신 수영복 러시, 풍경 자체가 다른 베른의 여름
2025년 여름, 전 세계 SNS와 영상 플랫폼을 뜨겁게 달구는 한 장면이 있다. 정장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직장인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강물에 몸을 맡긴다. 출근길 혹은 퇴근길, 스위스 베른(또는 바젤) 시민들은 자연 그대로를 통근로 삼는다. 우리나라의 ‘지옥철’, ‘출퇴근 전쟁’과는 전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곳에선 일상적인 풍경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 공식 SNS, 뉴스 매체, 또 수많은 여행객과 시민의 후기 영상이 이런 ‘물 위의 퇴근’을 꾸준히 전한다. “정말 스위스 직장인은 강에서 수영하고 집에 가는가?”라는 질문에, 스위스 현지에서는 “네, 물론입니다. 출퇴근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죠”라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 독특한 풍경의 중심지, 바로 스위스의 수도 ‘베른’이다.

‘에메랄드 강’에 몸을 맡긴 사람들, 그곳은 어디?
스위스 베른 도심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에메랄드빛 강이 있다. 바로 ‘아레강(Aare River)’이다. 알프스 빙하에서 흘러온 물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청정함을 자랑한다. 베른 뿐만 아니라 바젤, 취리히 등 다른 도시에서도 자연 유입 강이 도시를 지중해처럼 뚫고 흐른다.
베른은 특히 이 아레강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도시를 거의 고리처럼 에워싸기 때문에, 시내 대부분의 주거·업무 지구가 강변과 맞닿아 있다. 각종 학교, 정부청사, 기업, 레스토랑, 호텔이 모두 강에서 도보로 불과 몇 분 거리. 봄부터 초가을까지, 해가 밤 10시까지 길게 남아있는 스위스 특유의 기후는 퇴근 이후도 “낮처럼” 만들며,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물놀이와 강변산책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강에 들어가 퇴근’은 어떻게 가능한가…실제 하루
퇴근 시간, 베른의 한 관청이나 회사에서 일하던 직장인이 업무를 마치고 강변으로 향한다. 강가의 탈의실이나 간이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은 100% 방수 기능이 있는 ‘수영 가방(Dry Bag)’에 넣는다. 이 방수 가방은 입에 빨대를 물 듯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린 뒤 입구를 봉하면, 물 위에 완전히 뜨기 때문에 일종의 ‘미니 튜브+짐가방’이 되는 셈이다.
그 상태로 아레강의 유속에 몸을 맡기면, 강물은 걷는 속도의 6배~10배 가까운 속도로 도시 중심부를 따라 흘러준다. 별다른 노를 젓지 않아도 몸만 맡기면 되고, 숙련자라면 수영으로, 어린이나 초보자는 작은 튜브나 방수백에 올라 휙~ 이동한다. 실제로 강물 터미널에서 ‘회사-집’, ‘집-회사’, 혹은 학생의 경우 ‘학교-집’ 동선이 가능한 포인트가 즐비하다.
물론 모든 시민이 매일 수영으로 이동하는 건 아니고, 대략 10년 이상 수영·강물 환경에 익숙한 도시 거주자들이 휴일, 더위에 맞춰 참여한다. 하지만 여름철엔 수백~수천 명이 강물에 몸을 맡긴 채 이동·소풍하는 모습이 ‘새삼’ 뉴스거리가 아니다.

“30분 걷는 길, 5분 만에 강물이 데려다준다”…이동의 자유와 효율성
실제 베른 현지에서는 “걸어서 혹은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도 아레강을 타면 5~10분이면 충분하다”는 체험담이 쏟아진다. 유속이 빨라 굳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순식간에 도시 중심~외곽 거점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스템에 힘을 싣는 것은 스위스 전역, 특히 베른·바젤·취리히 등에 촘촘히 갖춰진 강변 ‘입수 구간’(Start Point)와 ‘휴식 포인트’, ‘탈의실’, ‘샤워, 갈아입는 공간’ 등이다. 아레강을 따라 구간마다 인명구조원- 경고안내판- 수상 인명구조소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에도 만전을 기한다.

‘출근-퇴근’ 뿐 아니라 일상 속 휴가…강문화의 전통
이렇듯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강에 몸을 맡기는 풍경이 가능해진 건 단순히 강이 있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스위스는 19세기 후반부터 강과 호수를 주민 친화적 공공공간으로 꾸준히 개발해왔다. 도시의 하수처리, 수질관리, 생태복원, 강변공원 조성, 시민 개방형 레저 서비스 활성화 등이 오랜 정책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여름에는 학생, 직장인, 가족, 노인, 심지어 반려견을 동반한 시민들까지 튜브, 카약, 패들보드, 수영복 차림으로 강변에서 하루를 보낸다. ‘한강공원 피크닉+강물 놀이터+워터파크+대중교통’이 결합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들에게 ‘강변에서 놀기, 이동하기, 휴식을 즐기라’는 문화 캠페인, 강물 수영 페스티벌, 야외 콘서트까지 사계절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적 토양이 직장인의 ‘수영복 퇴근’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강물 퇴근’이 쉬운 낭만이 될 수 있었던 스위스의 진짜 비밀
‘수영복 입고 퇴근’이라는 믿기 힘든 장면이 일상이 된 곳, 그곳은 단순 기발한 도시가 아니다. 자연과 교통, 여가와 실용, 안전과 낭만이 ‘모두’ 바뀐 이 진짜 선진국의 민낯은, 결국 일과 삶을 동시에 존중하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시민 개인의 참여와 자율이 완성한 문화적 산물이다.
베른강에 몸을 띄워 집으로 돌아가는 스위스 시민의 모습은, 교통체증과 스트레스의 터널 속을 견디는 대도시 직장인들에게 “내 삶을 직접 선택하라”는 하나의 슬로건이자 강렬한 워너비가 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