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이 아니라 감정을 쌓고 싶을 때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쉬러 가고 어떤 사람은 스릴 넘치는 체험을 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이라는 걸 채우러 떠난다 감정이 메말랐을 때, 뭔가 새로운 자극 없이 무뎌졌을 때 유럽 여행이 가진 힘은 그때 발휘된다 도시 전체가 예술이고 거리 풍경 하나하나가 감성의 조각처럼 다가오는 장소들이 있다 단순히 유명한 곳 말고 감정을 진짜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예술적인 여행지 4곳을 소개한다

프랑스 아를 – 고흐가 머물던 그 햇빛 아래에서
아를은 프랑스 남부에서도 소박한 도시지만 고흐 덕분에 이름값은 결코 작지 않다 이곳은 고흐가 ‘해바라기’, ‘노란 집’, ‘밤의 카페 테라스’ 등을 남긴 곳이자 실제로 작품 속 배경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도시 곳곳에 고흐의 작품을 따라가는 산책 코스가 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보다 거리 자체가 미술처럼 느껴진다 여름 햇살은 짙고 강렬하고 건물은 모두 따뜻한 노란색 계열이라 걷는 것만으로도 색에 감정이 물든다 관광지라기보단 한 편의 그림 속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할 도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 음악이 도시 전체에 흐른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로 알려졌지만 단순한 음악가의 출생지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이 거리 풍경과 일상의 일부로 녹아 있는 곳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모차르트 생가부터 매일같이 열리는 거리 공연까지 어디를 가든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여름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성 안, 광장, 정원까지 모두 무대가 된다 미라벨 정원, 호엔잘츠부르크 성, 구시가지 돌길은 그 자체로 고전적인 미감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세가 느긋해지고 말투도 부드러워진다 음악을 흘려보내는 도시답게 감정의 리듬이 천천히 조율되는 느낌을 준다

스페인 톨레도 – 중세와 예술이 공존하는 미로 같은 도시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톨레도는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도시다 돌담과 아치형 문, 굽이진 골목, 좁은 계단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시간이 만든 예술적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엘 그레코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이기도 해서 미술관과 성당마다 회화 속 상징들이 살아 있다 하지만 톨레도의 진짜 매력은 도시 전체가 한 폭의 거대한 캔버스 같다는 점이다 골목 하나를 돌면 빛이 바뀌고 성당의 첨탑이 다르게 보이고 오후가 되면 벽돌색 건물이 노을에 물들기 시작한다 눈으로 보는 장면이 계속해서 감정의 레이어처럼 쌓이는 도시다 혼자 걷는 여행자라면 이 감정을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이탈리아 라벤나 – 바닥이 아니라 천장을 봐야 하는 도시
라벤나는 흔히 알려진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다르다 로마의 유적이나 피렌체의 회화와 달리 여긴 ‘모자이크의 도시’로 불린다 산 비탈레 대성당,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같은 공간에 들어가면 눈이 바닥이 아니라 천장으로 향하게 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푸른 모자이크, 황금빛 성인들의 얼굴, 구석구석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이 정신을 사로잡는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이 모자이크 예술은 조용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 현대적인 볼거리나 유명 맛집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감성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지가 된다 시끄럽지 않고 오감 중 시각과 감정만이 맑게 작동되는 도시다

감정을 채우는 건 결국 ‘공간’이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때론 그보다 감정이 필요한 때가 있다 뭔가를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할 때 그때 유럽의 예술 도시는 확실한 해답이 된다 아를, 잘츠부르크, 톨레도, 라벤나는 모두 규모가 크거나 요란한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감정이 고여드는 장소들이다 유럽은 유적이 아니라 리듬이고 채색이며 공기다 그냥 여행이 아니라 ‘느낌’을 떠올리고 싶을 때 이 도시들로 발걸음을 향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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