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론 시대가 만든 ‘괴상한’ 전장의 풍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양측의 전투 차량이 점점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코스티아틴니우카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미국산 험비가 각종 금속 철망과 그물, 촘촘히 튀어나온 막대기들로 덮인 장면이 포착됐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 속 전투 차량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이런 변형은 대부분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비롯됐다. 군 당국이 설계·제작한 표준 장비가 아니라, 현장에서 병사들이 구한 재료로 직접 용접해 만든 것이어서 형태가 제각각이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외형을 띠기도 한다.

‘코프 케이지’라 불린 조롱의 대상
이 같은 임시 장갑 구조물은 서방 언론과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코프 케이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롱을 받았다. ‘코프(cope)’는 불리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행동을 뜻하는 신조어로, ‘케이지’는 새장이나 우리를 의미한다.

러시아군은 전쟁 초반부터 탱크 위에 철망·철판 구조물을 얹은 형태를 선보였는데, 당시에는 방어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드론 공격이 빈번해지고 전차 상부를 노린 자폭 공격이 늘어나면서, 이 장치가 실제로 피해를 줄였다는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거북이 전차’에서 우크라이나 험비까지
전장에서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러시아군의 ‘거북이 전차’였다. 포탑과 차체 위를 두껍게 감싼 철망과 쇠 구조물이 거북 껍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러시아군은 장갑차에도 굵은 철사와 쇠파이프를 덧대어 드론 공격을 막으려 했다. 이 흐름은 우크라이나군에도 전파됐다. 우크라이나군은 험비를 비롯한 차량 주위에 철망을 둘러싸고, 포탑 위에도 금속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는 드론이 차량 상부로 직접 접근해 폭발물을 투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구조물은 대체로 무겁고 차량의 속도와 기동성을 떨어뜨리지만, 생존율 향상이라는 장점 때문에 채택이 늘고 있다.

이스라엘까지 채택한 ‘안티드론 장갑 스크린’
드론 방어용 장갑 구조물은 이제 다른 전장으로도 확산됐다. 지난해 하마스와 교전을 벌인 이스라엘군은 자국 주력 전차 메르카바 Mk 3와 Mk 4에 ‘안티드론 장갑 스크린’이라는 명칭을 붙여 포탑 상부를 덮는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아 표준화한 버전으로, 상부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높였다. 전통적으로 장갑은 전면과 측면 방어에 중점을 두었지만, 드론과 상부 공격형 무기 확산으로 포탑과 상부 장갑 강화가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았다.

전장의 새로운 표준이 될까
‘코프 케이지’는 처음 등장했을 때 웃음거리였지만, 이제는 현대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장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소형 드론의 확산과 저비용·고위력 폭발물의 결합은 기존 방공망이나 장갑으로는 막기 어려운 위협이 됐다. 철망과 금속 구조물은 완벽한 방어책은 아니지만, 피해를 줄이고 병력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전적 가치를 입증했다. 향후 방산업계는 이러한 현장형 방어 장비를 경량화·모듈화해 차량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크다. 웃음에서 시작된 이 장비가, 머지않아 ‘드론 전쟁 시대의 필수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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