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안보 보장 불신, 자주국방 논의 본격화
호주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더 이상 미국의 안보 보장만 믿고는 미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보, 그리고 미국의 선택적 개입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독자적 장거리 타격 능력 확보 필요성이 제기된다.
호주 국방분석가 로스 배비지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호주가 스스로 강력한 억제력을 보유해야 한다”며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개발을 공식 의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사거리 5,500km 이동식 미사일의 매력
배비지가 제안한 핵심 전력은 사거리 3,000~5,500km급 도로 이동식 탄도미사일이다. 이 무기는 기동성과 은폐성이 뛰어나 발사 전 탐지가 어렵고, 발사 직후 수천 km 떨어진 목표를 수십 분 안에 타격할 수 있다. 적에게는 ‘예방 타격 가능성’이라는 심리적 압박을 주며, 본토 방어를 넘어 역외 억제력까지 보장한다.
그는 걸프전 당시 연합군이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를 끝내 찾지 못한 사례를 들어, 이동식 발사체계가 얼마나 강력한 억지 무기인지 설명했다.

단순 공격 무기 아닌 ‘억제력의 상징’
이동식 중거리 미사일은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라 적의 셈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다. 배비지는 “적이 호주 본토를 공격하기 전 반드시 그 대가를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탄두(MIRV) 기술을 적용해 한 발의 미사일로 여러 목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고, 전자전 대응장치·기만체를 탑재해 적 방공망을 뚫을 수 있다면 억제력은 배가된다. 이런 능력은 호주가 단순히 방어만 하는 나라에서, 침략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국가로 변모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협력 파트너로 한국과 이스라엘 주목
호주가 독자 개발 대신 빠른 전력화를 위해 고려하는 협력국으로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꼽힌다. 이스라엘의 예리코-3는 사거리 6,500km급으로 이미 중거리 미사일 최상위권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의 현무-5는 5,000km급으로 알려져 있다.
두 국가는 센서, 유도장치, 탄두 등 핵심 기술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높은 자립도를 갖췄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배비지는 “우방국과 협력해 미사일과 발사대를 우선 도입하고, 이후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규범과 기술 이전의 제약
다만 한국은 미사일 기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 협의체 MTCR(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 회원국이어서 장거리 미사일 기술 이전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다 유연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 역시 호주와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만큼, 제한적 범위 내에서 기술적 협력은 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호주가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든, 결국 자주국방을 위한 독자 생산 능력 확보가 최종 목표가 될 전망이다.

‘힘을 통한 평화’와 호주의 미래 선택
미국의 핵우산이 여전히 호주 안보의 큰 틀을 보장하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개입을 주저할 수 있다는 불신은 호주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독자 중거리 미사일 보유 논의는 단순한 무기 개발이 아니라, 호주가 앞으로 어떤 전략적 노선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선택을 의미한다.
자국 영토와 국민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억제력을 갖추는 것, 그것이 호주 안보 전략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논의가 현실로 이어질 경우 호주는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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