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허벌판 0원”에서 시작, 한국을 철강강국으로 만든 단 한 사람 – 박태준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제철 산업의 불모지였다. 주요 제철소는 일제강점기 북쪽에 집중돼 있었고, 남한 산업화를 위한 도로·항만·공장 건설에 쓸 철은 바닥났다. 수입은 엄두도 못 냈고, 국내에 만들 기술력·자금도 없었다.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기반인 철강산업은 그야말로 ‘허허벌판 0원’에서 출발해야 했다.

불가능이라던 ‘대한민국 제철소’에 도전
1967년, 정부는 선진국 기업에 자금을 빌려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으나, “너희는 할 수 없다”, “적당히 규모만 지어라”라는 무시와 승인 거부에 부딪혔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박태준은 자원 외교와 추진력으로, 일본을 찾아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자료조사와 설득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68년, 대일청구권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고,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설립에 성공했다.

허허벌판 모래사장, 첫 삽은 ‘나무 사무실’뿐
포항종합제철이 출발할 당시 건설 현장은 모래사장 위 나무로 된 사무실 하나가 전부였다.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 전국 각지에서 영웅처럼 불린 박태준 회장의 ‘미친놈들 집단’이 모여들었고, 곧 “우리 손으로 제대로 된 제철소를 만든다”는 신념이 싹텄다.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1972년 7월, 포항 1기 제철소를 완공했고, 첫 쇳물이 나오는 순간 한국 철강산업의 새 역사가 만들어졌다.

‘불가능은 없다’…세계가 놀란 6개월 만의 흑자
포항제철은 보통 수십 년 적자가 당연하던 업계 관행을 깨고, 가동 후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박태준의 비용절감·혁신·공정개선 전략은 저렴한 철강 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로써 도로·건설·조선·자동차·가전 등 한국 산업발전의 ‘기초 체력’이 갖춰졌다. 1988년에는 국내외 투자자와 정부의 신뢰로 회사가 상장됐다.

박태준이 남긴 철학 – ‘모든 것을 나라에, 사회에’
박태준은 포항제철이 조상들의 피와 땀을 바쳐 세운 기업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포스코가 성공한 뒤에도 “단 한 주의 주식도 개인적으로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남은 재산까지 사회에 모두 환원했다. 자신은 어떠한 개인적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라는 박태준의 정신은 한국 산업사에 영구히 기록된다.

‘허허벌판에서 세계 철강강국’…박태준이 만든 K-철강의 신화
박태준과 그의 동료들은 불가능이라는 현실, 빈손·무시·외면 속에서도 오직 신념과 도전, 그리고 헌신으로 대한민국을 철강강국으로 만들어냈다. 그가 쌓은 제철 유산은 수많은 산업의 기초가 되었고, 사회 환원과 무소유 철학은 역사적 존경을 받았다. 한국의 모든 건설·자동차·기계·조선 등 산업은 ‘박태준의 손끝에서 시작된 쇳물’로 성장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 철강·중공업 강국으로 우뚝 섰고, 그 핵심에 ‘한 명의 남자, 박태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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