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력만으로 극복 못한 ‘정치의 벽’
한국 ‘천궁’과 ‘신궁’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성능을 입증받았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신궁’의 요격 성과는 국제적으로도 호평받았다. 하지만 루마니아 국방부는 나토(NATO) 상호운용성 기준과 기술‧상업적 검토 결과를 들어 계약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는 정치적 요소와 외교 역학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프랑스와 유럽 8개국이 운용하는 ‘미스트랄3’는 EU 차원의 공동조달 품목, 그리고 유럽 회원국 간 운용과 보급이 용이하다는 전략적 이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루마니아도 EU 공동조달 움직임에 동참하며 결국 국산 방공
체계를 배제했다.

유럽 방산 시장의 개방성과 진입장벽
이번 사업에서 한국이 선택받지 못한 이면에는 방위산업 시장에서의 외교·정치적 셈법, 그리고 관리 체계상의 허점도 지적된다. 특히 LIG넥스원은 초기에 입찰 보증금 영수증 관련 서류상 오류를 범해 행정기관으로부터 탈락 통보를 받았고, 이후 이의 제기를 통한 재참여도 쉽지 않았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서류 미비가 쌓이면서 수주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됐고, 이는 실제 경쟁적 프레젠테이션과 성능 시연 이전에 ‘행정의 문턱’이 수출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유럽 결속력과 ‘이너서클’ 전략의 영향
방위제품 선정의 또 다른 핵심은 프랑스, 벨기에, 루마니아, 덴마크 등 EU 9개국이 미스트랄3의 공동 구매에 공식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EU는 최근 공동 보안 강화와 산업 육성을 위해 방산 협력체계를 가속화하는 ‘공동 조달 프로젝트(EDIRPA)’를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루마니아는 EU의 집단 안보체계 및 유럽 방산 ‘이너서클’에 편입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반면, 한국산 무기체계는 이같은 유럽내 정치적 연대와 조달 체인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기술성과 실전 경험의 한계
한국산 미사일은 성능, 가격면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신궁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저고도 드론과 순항미사일 요격에 효과를 입증하며, 천궁 또한 수출 시운전과 현장 실사용이 반복 검증되었다. 하지만 루마니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인근 ‘나토 동부 전선’ 방어 능력 강화라는 전략적 관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사실상 ‘나토 표준’과 유럽 연합 공급망, 그리고 동맹체계의 일원화가 기술력보다 우선한 셈이다.

국제 방산 시장의 현실과 한국의 과제
이번 참패 사례는 K-방산이 뛰어난 무기와 실전 이력만으로 국제 수주전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군사적 효용 외에도 복잡한 국제정치, 외교, 지역 동맹체계, 표준화와 운용의 편의성 등이 총체적으로 맞물린다. 특히 유럽, 나토 회원국 대상의 수출에서는 더 세밀한 외교력, 현지 파트너십, 입찰 행정 대응력, 정책적 교섭력 등이 앞으로의 수출 공식으로 요구된다.
한국 방산업계는 이번 루마니아 사례를 교훈 삼아 단순 제품 경쟁력뿐만 아니라, 글로벌 표준화, 전략적 외교력, 정치적 설득력, 사업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강화된 국제 방산 시장의 구조 변화와 유럽 중심의 연합 조달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방산 강국’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임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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