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돌연변이가 말의 생태를 바꾸면서 인류의 주된 이동수단이 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초원을 달리던 야생마를 길들여 가축으로 삼았는데, 그 과정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유전학 연구팀은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준 기마문화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시작점이라고 전했다.
말은 사람들의 이동수단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명 자체의 흐름을 변하게 만들었다. 말은 아득히 먼 대륙을 연결했고, 농경과 일상생활은 물론 전쟁의 양상까지 바꿔버렸다.
연구팀은 사람이 애초에 초원을 달리던 야생마를 어떻게 길들였는지 조사했다. 고대 DNA의 대규모 연구에 착수한 결과, 유전자 GSDMC에 일어난 변이가 경계심이 많은 말을 사람이 안장을 얹고 올라타는 동물로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CNRS 유전학자 루도빅 올란도 박사는 “수천 년에 걸친 말의 게놈을 분석해 행동과 체격, 털 색상에 관련된 266가지 유전자의 변화를 추적했다”며 “말의 가축화 초기 단계에서는 화려한 털과 몸집보다 온순함이 중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 증거 중 하나가 ZFPM1이라는 유전자”라며 “ZFPM1은 쥐의 경우 기질이나 불안, 스트레스 내성에 관여하는데, 말에게도 같은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말이 약 5500년 전 급격한 유전자 변화를 겪으면서 보다 침착하고 온순하게 변모했고, 인간이 길들여 가축으로 삼았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이 시점에서 말은 아직 사람을 등에 태우고 이동하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루도빅 박사는 “ZFPM1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가축화의 첫걸음이며, 진정한 전환은 수백 년 뒤 이뤄졌다”며 “약 4200년 전 GSDMC 유전자에 특정 변이를 가진 말이 나타났다. 이 변이로 말의 척추가 변형됐고 사지가 강인해져 달리기에 특화되면서 말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동물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박사는 “놀랍게도 이런 극적인 변이는 단기간에 퍼져 나갔다”며 “집단 전체의 1%에 불과한 특이 유전자 개체가 수백 년 만에 거의 모든 개체로 퍼지면서 말은 인간의 보편적인 이동수단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런 양상의 유전적 변이는 말이 거의 유일하다. 사람의 경우 우유를 소화하는 유당분해 유전자는 선택 강도가 불과 26%로 천천히 확산됐지만, GSDMC는 압도적인 속도로 말의 미래를 결정해 버렸다.
이렇게 변모한 말은 인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약 3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현재의 카스피해 북쪽)에 탈 수 있는 말이 보급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식량으로서가 아니라 전쟁이나 장거리 이동을 위해 말을 이용했다. 인류의 행동 범위는 크게 확대됐고 전사들은 광활한 초원을 누볐다. 유목민들은 보다 멀리 이동해 떨어진 땅들이 서로 연결됐다.
루도빅 박사는 “기마문화의 확산 후에 철기시대에 접어들어 말은 더욱 개량돼 사람들은 더 크고 튼튼한 품종을 손에 넣었다”며 “이로써 군사력은 크게 향상됐고 기마대는 전장의 주역이 됐다. 말은 제국의 확대, 전술의 발달, 농업이나 이주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