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에 번진 ‘빚 폭탄’ 공포
미국 금융시장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월가의 대표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가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 부실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잠잠하던 ‘제2 금융위기’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제프리스는 자회사 포인트보니타캐피털을 통해 자동차 부품사 퍼스트브랜즈(First Brands)의 매출채권 약 7억1500만 달러(약 9,600억 원)를 담보로 자금을 대출했으나, 해당 기업이 갑작스레 파산하면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여파로 제프리스 주가는 10월 들어서만 25% 이상 폭락하며, 2020년 팬데믹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사모신용 시장, 71조 달러의 ‘규제 사각지대’
사모신용은 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사모펀드 등 비은행 금융회사가 비공개 계약으로 고금리에 대출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이다. 대출 심사나 자산 공개 등 공적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에, 고금리 환경에서는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기 쉽다. 미국 사모신용 시장은 2020년 1조 달러 규모에서 2024년 1조5000억 달러(약 2,022조 원)까지 급성장했으며, 월가 추산에 따르면 잠재 리스크 자산만 5조 달러(약 6,700조 원)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부실로 노출된 자산만 715억 달러(약 97조 원), 그중 최대 71조 원 규모가 채무 불이행 위험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퍼스트브랜즈의 파산, 구조적 문제 드러내다
퍼스트브랜즈는 과거 크라운그룹에서 분리된 자동차 부품사로, 부채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자 부담이 폭증했고, 판매 둔화까지 겹치자 9월 말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법원 자료에 따르면 부채는 약 100억~500억 달러에 달했으나 자산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은 제프리스뿐 아니라 JP모건, 웰스파고, 웨스턴얼라이언스 등 다수의 지역은행이 동일한 구조의 ‘사모신용 연계채권’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바퀴벌레를 한 마리 보면 그 근처에 더 있다는 말이 있다”며 사모신용 전반으로의 부실 확산을 경고했다.

‘제2 SVB 사태’로 번지는 시장 불안
이번 사태는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제프리스 사태 여파로 KBW 지역은행 ETF는 하루 만에 3.6% 급락했고, 미 은행지수는 연중 최고치 대비 16% 하락했다. 뉴욕증시 주요지수도 S&P500 선물이 1.1%, 나스닥 선물이 1.4% 하락하는 등 금융주를 중심으로 시장이 급격히 냉각됐다. 여기에 자이언스뱅크·웨스턴얼라이언스가 ‘부실 대출 손실’을 공개하며 연쇄 불안을 증폭시켰다. 일부 투자전문가들은 “제프리스는 2008년 베어스턴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의 전조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CEO의 밤샘 ‘긴급서한’, 불안의 신호
제프리스의 리처드 핸들러 CEO는 13일(현지시간) 밤 늦게 투자자에게 긴급 서한을 보내 “손실은 회복 가능하며, 시장의 반응은 과도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월가에선 “CEO가 주말 밤에 서한을 보낸다는 것은 진짜 위기의 전조”라며 비관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08년 리먼브라더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모두 비슷한 형태로 CEO가 “유동성 충분하다”고 해명한 후 몇 주 내 붕괴한 전례가 있다. 블룸버그는 “제프리스의 사모신용 구조는 상업은행보다 위험한 유동성 압박이 존재한다”며, 이미 기관투자자 센터(Centerbridge), 블랙록(BlackRock) 등이 평가 손실을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신용 리스크의 도미노 경고
FT는 “퍼스트브랜즈 파산은 사모신용 시장의 첫 균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 심지어 자금난 지역은행까지 사모신용 상품에 깊게 노출돼 있는 만큼, 본격적인 기업 부도 확산 시 파급력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에 버금갈 가능성이 있다. 미 연준이 긴축 완화 대신 금리 고착을 유지할 경우, 고금리·저성장 국면에서 도산 기업은 폭증할 것이며, 이 충격이 사모신용 채권을 보유한 투자은행·자산운용사 전반에 ‘도미노 부실’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를 “보이지 않는 71조 폭탄”이라 부르며, 아직 폭발하지 않은 채 월가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건 금융위기가 아니라, 시장 스스로 불붙인 불신 위기”라는 말처럼, 사모신용의 불투명성이 미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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