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깊어질수록, 공주의 산은 붉은 숨을 내쉰다. 계곡 위로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고, 단풍잎이 한 장씩 흩날릴 때마다 고요한 종소리가 퍼진다. 그곳은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마곡사다.
신라 시대 선덕여왕 때 세워져 천 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사찰은 전란도 피해 간 ‘십승지지(十勝之地)’로 불린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공주 가볼 만한 곳 마곡사를 찾는 이유는 오직 하나, 올해 단풍이 가장 느리게,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붉은 숲길이 인도하는 가을의 입구

마곡사에 들어서면 먼저 해탈문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나무 문살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고,그 너머로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사찰의 지붕을 덮고 있다. 돌계단을 오르면 사천왕문과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펼쳐진다.
절집 사이로 보이는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잎, 그리고 기와지붕의 곡선이 마치 오래된 산수화 한 폭 같다. 이곳이 왜 유네스코가 주목한 산사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마곡사를 흔히 수수하고 편안한 사찰이라고 알고 있는 이유는 경내를 흐르는 희지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지천에는 15분 명상쉼터가 조성됐는데, 이곳에 앉아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단풍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힐링이된다.
세월을 품은 건물들

마곡사는 단풍도 유명하지만, 그 안에는 세월의 풍파를 겪은 건축물들이 고요히 서 있다. 대웅보전에는 섬세한 단청이 남아 있고, 대광보전과 영산전은 각각 불교의 교리와 수행의 공간을 상징한다.
특히 사천왕문을 지나 바라보는 대웅보전의 풍경은, 가을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 시간대에 가장 아름답다. 또한 조선 세조가 탔던 ‘가마(輦)’와 청동향로, 고려 후기의 필사 불경 등도 보존되어 있어 단풍을 감상하며 자연스럽게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마곡사 이름에도 재미있는 설이 있다. 보철화상이 설법을 펼칠 때 수많은 신도가 모여든 모습을 보고 ‘삼밭의 삼대처럼 모였다’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전란도 비켜간 평화의 산사

이곳은 오랜 세월 전쟁의 화마를 피한 곳이다. 임진왜란도, 6·25전쟁도 이곳을 스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공기는 묘하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맴돈다. 『택리지』에 기록된 “십승지지”라는 말처럼, 산세가 사방을 감싸고 계곡이 천연의 방패처럼 흐른다.
단풍 든 산길을 걷다 보면,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2018년,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오래된 사찰이기 때문이 아닌 불교의 일상과 수행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공간인 덕분이다.
아침 예불 소리가 퍼지는 마곡사의 새벽은 천 년 전 신라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수행자들이 실제로 생활하며 기도하는 살아 있는 사찰이라는 점이 이곳의 진짜 매력이다.
■마곡사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운영시간: 09:00-18:00
입장 & 주차: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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