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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징물 “63빌딩까지 만들었지만” 하루아침에 몰락한 이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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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세운 그룹, 46년 만에 사라지다


여의도 한강변의 상징이었던 63빌딩은 한때 ‘신동아그룹’의 얼굴이었다. 1953년 조선제분 인수에서 출발해 금융·보험·건설·식품·무역을 아우르던 이 그룹은 1980년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1990년대 후반 금융비리와 이른바 ‘옷로비 사건’ 여파 속에 해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3빌딩은 이후 한화그룹 소유가 됐고, 신동아라는 이름만 과거 기사와 회고 속에 남았다.

적산기업 불하로 시작된 신동아의 성장


신동아그룹의 뿌리는 창업주 최성모가 6·25전쟁 이후 실향민 신분으로 세운 세기상사와, 이를 기반으로 불하받은 적산기업 조선제분이었다. 최성모는 1953년 조선제분을 인수한 뒤 동업자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한 차례 손을 뗐다가, 1964년 조선제분을 다시 단독 인수하며 사명을 ‘동아제분’으로 바꾸고 그룹의 모태를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제빙냉장, 대농산업, 고려수산 등을 설립·인수하며 식품·냉장·수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1966년에는 신동아화재해상보험, 1969년에는 삼풍산업·대한생명·대한플라스틱 등을 차례로 품에 넣으며 금융·부동산·제조를 아우르는 중견 재벌로 올라섰다. 1971년에는 ‘콘티빵’으로 알려진 한국콘티넨탈식품을 설립해 제과·식품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63빌딩 완공, 정점 찍은 1980년대


1976년 창업주 최성모가 사망하면서 장남 최순영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고, 그의 시기와 맞물려 신동아는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1985년 서울 여의도에 당시 아시아 최고층 빌딩이었던 63층 업무용 빌딩(63빌딩)을 완공하며 “한국 현대화와 고도성장의 상징”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63빌딩의 외관을 형상화한 그룹 로고가 사용될 정도로, 이 빌딩은 단순한 부동산을 넘어 신동아라는 브랜드 자체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은행·보험·제분·건설을 아우른 사업 포트폴리오로 1980년대 중반 재계 순위 상위권에 올랐지만, 동시에 고금리·고부채 구조와 공격적 확장이 맞물려 재무구조의 취약성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

사업 실패와 무리한 해외 금융, 몰락의 전조


1988년 신동아 계열사였던 한국콘티넨탈식품이 폐업하고, 1989년 신동아건설이 그룹에서 사실상 독립하면서 재무 기반이 약화됐다. 여기에 1990년대 들어 금융 자유화·국제 경쟁 심화·부동산 경기 변동이 겹치며 전통 제조·보험 중심 재벌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최순영은 새로운 돌파구로 무역·금융 사업 확대를 택했고, 1996년 미국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 ‘스티브 영(Steve Young)’을 설립해 이를 통해 국내 은행들로부터 1억 8,500만 달러 규모의 무역금융·대출을 끌어오는 고위험 거래를 단행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가운데 2,000만 달러를 제외한 상당액이 실제 사업에 쓰이지 않고 해외로 유출·횡령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신동아의 금융 리스크는 단순 한계를 넘어 형사 사건으로 번졌다. 1999년 2월 최순영 회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룹의 신용도와 존속 가능성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옷로비 사건’과 대한생명 부실 지정, 그룹 해체로


신동아그룹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앞당긴 것은 이른바 ‘옷로비 사건’이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초기,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가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의 고가 의류 구매 비용을 대신 결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재벌·검찰·정권 실세를 둘러싼 권력형 비리 논란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국회 청문회와 대한민국 최초의 특별검사 도입으로 이어질 만큼 정치적 파장이 컸지만, 정작 관련 인물들에 대한 형사 처벌은 상대적으로 경미해 “정치만 흔들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남겼다. 그러나 여론의 화살은 재벌과 정경유착 전반으로 향했고, 금융감독당국은 같은 해 8월 신동아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대한생명보험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해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 절차에 착수했다. 사실상 그룹 지주 역할을 하던 보험사가 감독당국 관리 체제로 넘어가면서, 신동아그룹은 46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63빌딩의 새 주인, 그리고 흩어진 유산들


그룹 해체 이후 신동아의 주요 자산과 계열사들은 각기 다른 새 주인을 찾았다. 63빌딩(현 63시티)과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신동아화재해상보험(후에 한화손해보험으로 편입)은 공적자금 관리 기간을 거쳐 2002년 한화그룹에 일괄 매각되며 한화 금융·부동산 계열의 핵심 자산이 됐다.

그룹의 모태였던 동아제분은 한국제분을 거쳐 2010년대 들어 사조그룹에 인수되면서 ‘사조동아원’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한때 신동아 로고와 함께 재계 판도를 상징하던 63빌딩은 이제 한화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신동아그룹이라는 이름은 한국 기업사에서 “과감한 확장과 정경유착, 금융비리, 그리고 그룹 해체”로 기억되는 사례로 남았다.

‘63빌딩 신화’가 남긴 교훈


신동아그룹의 부상과 몰락은 한국 재벌사의 전형적인 명암을 압축한다. 전후 혼란기 적산기업 인수와 정부 주도 성장정책을 발판으로 급팽창했지만, 내부 지배구조 취약성과 과도한 차입·무리한 해외 금융, 그리고 정권과 얽힌 비선 로비가 한순간에 그룹 전체를 무너뜨린 것이다.

특히 상징 자산이었던 63빌딩조차 그룹의 위기를 막지 못한 채 다른 대기업 손에 넘어간 과정은, 외형·상징과 별개로 재무 건전성과 투명한 지배구조, 법적·윤리적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지금도 금융·보험·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복합기업들이 구조조정과 규제 강화 국면을 맞을 때마다, “63빌딩까지 세웠던 신동아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말이 교훈처럼 회자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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