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과 회의실을 오가던 ‘두 개의 전쟁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은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압박을 받았다. 반도체 초격차 투자, 스마트폰 글로벌 경쟁,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이 한꺼번에 겹친 상황에서, 그동안 최종 결정을 내려주던 ‘컨트롤 타워’는 사실상 비어 있었다. 이재용 회장은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도, 곧바로 경영회의에 참석해 수조 원대 투자를 결단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결과를 보고할 수도 없는 상황이 가장 괴로웠다”는 그의 회상은, 사적인 상실감과 공적인 책임이 동시에 몰려온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슬픔보다 책임이 먼저였다”는 고백의 의미

이 회장은 이후 법정 진술 등에서 당시 심경을 직접 적어 온 메모를 꺼내 보이며,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슬픔보다 책임이 먼저였다”고 적어놓았다고 말했다. 유가족으로서 장례를 치르는 동시에, 그룹 회장으로서 수만 명 임직원의 눈을 마주해야 했던 상황에서 그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조직 안정을 택했다. 그 시기 삼성은 “총수 부재로 흔들릴 것”이라는 외부 시선을 받았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고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에 대한 공격적 의사결정을 이어 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침묵과 절제가, 회사가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
리더십 시험대에서 선택한 ‘버티는 경영’

이 회장이 “그 시절에는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IT 시장에서 한 번 큰 결정을 늦추면, 경쟁사에 몇 년 뒤처질 수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 임원진은 당시를 돌아보며, “총수의 사적인 사정 때문에 투자·연구개발이 늦춰졌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반도체 공장 증설, 파운드리·AI·바이오 등 미래사업에 대한 장기 투자를 승인했고, 이 흐름이 이후 삼성의 실적과 포트폴리오에 그대로 반영됐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경영적으로는 가장 공격적인 결정을 내리던 시기였던 셈이다.
‘대기업 총수’ 뒤에 가려졌던 인간적인 얼굴

이재용 회장의 이런 고백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재벌 3세’ 이미지 뒤에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혜·사법 리스크 논란 속에서도, 그는 정면 반박보다는 사업과 투자, 조직 정비로 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청년 연구인력 채용 확대, 국내 첨단 공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 반도체·AI 인재 양성 프로그램 등은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작게 만드는 대신 더 크게 키우겠다”는 선택으로 읽힌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기술·품질 중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내세운 점은 그의 리더십이 단순한 승계가 아니라 ‘변형된 계승’임을 보여준다.
슬픔을 시스템으로 바꾼 리더십의 방향

이 회장이 스스로 “슬퍼할 틈이 없었다”고 표현한 시기는, 동시에 삼성 내부 시스템이 사람 한 명에게 덜 의존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의사결정 구조를 다층화하고, 각 사업부 책임경영을 강화하며, 실패 가능성이 큰 신사업에도 장기 투자를 허용하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았다. 개인의 고통을 단순한 에피소드로 남기지 않고, 조직이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고백은 리더십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화려한 성과보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결국 한 기업과 한 리더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이재용 회장의 이야기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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