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떠난 US 오픈 챔피언의 재조명

미 국방부는 올해 US 오픈 기간 중 뉴욕 퀸즈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조 헌트 대위에게 감사하는 날’ 행사를 열어, 그가 남긴 전쟁과 스포츠의 이야기를 되새겼다. 헌트는 1943년, 이미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상황에서 휴가를 허가받아 US 오픈에 출전했고, 그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해 화제가 됐다.
당시 행사의 연설자로 나선 미 해군 고위 장교는 헌트가 “개인적 영광보다 국가의 부름을 우선한 세대의 상징”이라고 평가하며, 그가 테니스 스타에서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US 오픈 주최 측 역시 2019년부터 매년 대회 기간에 헌트를 기리는 기념 행사를 지속하며, 젊은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라난 다재다능한 스포츠 스타

조 헌트는 1919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운동 신경을 드러냈다. 학창 시절 여러 종목에서 재능을 보였지만 특히 테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내, 고교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30년대 후반 미 전역 대학 선수들이 겨루는 각종 토너먼트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그는 당시 미국 테니스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강력한 서브와 공격적인 스타일, 밝은 성격으로 팬층도 두텁게 쌓았고, 언론에서는 “전쟁이 없었다면 더 많은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선수”로 평가한다.
징병제 도입과 해군사관학교, 풋볼 스타로도 활약

유럽에서 전쟁이 격화되던 1940년, 미국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징병제를 도입했고, 헌트 역시 청년 세대와 마찬가지로 입대 대상이 됐다. 처음에는 일반 병사로 군문에 들어섰지만, 그의 체력과 리더십, 스포츠 경력을 눈여겨본 군 당국은 그를 해군사관학교로 편입시켜 장교 후보생으로 교육하기로 결정했다. 해사 생도가 된 헌트는 테니스뿐 아니라 미식축구(아메리칸풋볼) 팀에서도 주전 선수로 뛰며 ‘만능 스포츠 맨’으로 이름을 알렸다. 1941년 11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통의 해군사관학교 대 육군사관학교 풋볼 경기에서는 맹활약을 펼치며 해사 팀의 14 대 6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 경기는 훗날 그의 군 경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자주 언급된다.
진주만 이후 전선으로, 그리고 하늘로

그러나 풋볼 승리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원래 1942년 봄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던 헌트와 동기들은 전시 상황에 따라 12월 19일로 졸업과 임관이 앞당겨졌고, 곧바로 여러 전방 부대로 배치됐다. 초기에는 수상함 장교로 근무하던 헌트는 “실제 전투에 더 깊이 참여하고 싶다”며 전투기 조종사 지원을 자원했고, 1943년 말 텍사스 댈러스의 해군 항공 기지에서 비행 교육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기지로 옮겨 F6F 헬캣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으며, 장차 항공모함에서 발진해 태평양 전선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휴가를 내고 뛰어 오른 US 오픈 정상

바로 이 조종사 교육 과정에 들어가기 직전, 헌트는 1943년 9월 해군에 짧은 휴가를 신청해 US 오픈(당시 미국선수권)에 출전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전국구 스타였던 그는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이며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당시 떠오르던 후배 선수 잭 크래머(1921∼2009)를 상대로 승리해 생애 첫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헌트가 현역 시절 거둔 유일한 메이저 타이틀로 남았고, ‘전쟁터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선물’처럼 회자된다. 1944년에도 타이틀 방어를 위해 다시 휴가를 요청했지만, 당시 전황 악화로 해군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코트 복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금도 US 오픈 역사에서는 “전쟁 중 휴가를 내고 우승한 군인 챔피언”이라는, 다시 나오기 어려운 기록으로 기록돼 있다.
전투기 추락으로 막을 내린 25세의 생애와 남겨진 유산

불과 2년 뒤인 1945년 2월 2일, 헌트는 플로리다 인근 대서양 상공에서 훈련 비행 중 F6F 헬캣 전투기를 몰다 바다로 추락해 숨졌다. 그는 아직 실전 배치를 앞둔 단계였고,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보지 못한 채 25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추락 당시 항공기 잔해와 시신은 모두 회수되지 못해,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바다에 잠든 실종자로 남아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1년이 지난 1966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은 헌트를 헌액하며 “탁월한 기량과 희생의 상징”으로 기렸다. 미국 테니스계와 군은 US 오픈 기간마다 그를 기리는 행사를 열며, 코트와 전장을 오가던 한 젊은 장교의 선택과 희생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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