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맥주 2만3,000원, 불닭볶음면 1봉지 1만4,000원

최근 이스탄불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항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극단적인 물가를 보여준다. 맥주 한 잔이 약 650리라(2만3,000원), 바나나 한 개가 230리라(8,300원), 패스트푸드 세트(빅맥 세트)는 800~900리라(3만 원대 중반) 수준에 팔리고 있다. 지중해 관광지 안탈리아의 쇼핑몰에서는 한국산 불닭볶음면 1봉지가 390리라(약 1만4,000원)에 판매되는 사례도 보고된다. 이런 가격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부담이 아니라, 현지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사치재’에 가까운 수준이다.
연 60~80%대 인플레… 임금은 못 따라간다

튀르키예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85%, 2023년에도 약 65%에 달했고, 2024년에도 40%대 중반을 기록하며 고물가가 장기화되고 있다. 문제는 임금이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 평균 순월급은 약 1만7,000리라(63만 원 안팎)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렸음에도 실질구매력은 계속 깎이고 있다. 노동계가 발표한 4인 가족 기준 ‘굶주림선’(기본 식료품비)은 약 2만2,000리라로, 평균 임금보다도 더 높게 책정돼 “평균적인 직장인의 소득으로는 최소한의 식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월급으로도 못 내는 집세, 무너지는 중산층

주거비는 물가 위기를 더욱 체감하게 만드는 요소다. 수도 앙카라와 대도시 이스탄불의 평균 월세는 2만리라(70만 원대 초반) 수준으로, 평균 임금을 고스란히 집세로 써도 부족한 수준에 이르렀다. 현지 40대 직장인은 “한 달 벌어도 렌트비가 감당이 안 돼,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돌려막으며 사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마저 대거 빈곤층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전직 대기업협회 회장 에롤 빌레지크는 높은 인플레이션, 생활물가 급등, 심각한 소득 불평등, 중산층 구매력 붕괴를 “튀르키예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 불안과 통화 폭락이 인플레에 ‘기름’

튀르키예의 고물가는 단순한 경기 과열이 아니라 정치적 불안과 통화·정책 신뢰 상실이 겹친 결과다. 2025년 3월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부패·테러 지원 혐의로 전격 구금되자, 시장 불안이 커지며 리라화 가치는 달러 대비 약 12% 이상 추가 급락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식품 가격은 곧바로 뛰었고, 환율 급등이 물가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여기에 정부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가정용 전기요금을 25%, 산업용 10% 인상하고, 천연가스 요금까지 올리면서 물가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 결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공식 통계 이상으로 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기준금리 46%인데도 인플레는 안 잡힌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40%대 중반까지 끌어올렸다. 42.5%에서 46%까지 잇단 인상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고금리 수준이다. 그럼에도 리라화 가치는 불안정하고, 물가 상승세도 뚜렷이 꺾이지 않고 있다. 이는 시장이 정부·중앙은행의 정책에 신뢰를 두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외환보유액 감소, 경상수지 적자, 정치 리스크 등이 겹치면서, 단순 금리 인상만으로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제어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외부 충격에 지나치게 취약한 경제 구조, 잦은 정책 번복이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고 평가한다.
2025년 이후, ‘형제의 나라’가 회복하려면

정부는 2025년 말까지 물가 상승률을 20% 초반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정치적 불안정과 제도 개혁 지연, 외환·재정 여건 악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튀르키예가 장기적인 물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첫째, 사법·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과 권력 리스크 축소, 둘째, 중앙은행 독립성과 거시경제 정책의 일관성 강화, 셋째, 에너지·식량 자급 기반 확충과 외화 수입원 다변화 같은 구조적 개혁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서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가 다시 안정과 성장을 찾기 위해서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정치·경제 전반의 신뢰를 재건하는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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