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마비 공포 속 등장한 첫 불활화 백신
195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에서는 폴리오(소아마비)가 해마다 수만 명의 아이들을 마비시키고, 상당수는 평생 휠체어나 철폐(iron lung)에 의존해야 했다.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의사이자 연구자였던 소크는 사멸(불활화)시킨 폴리오 바이러스를 이용해,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주사용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52~1954년 약 180만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 후, 1955년 미국 공중보건국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세계 최초의 실용적 폴리오 백신이 널리 접종되기 시작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CBS 기자 에드워드 머로가 “이 백신의 특허권은 누구 것이냐”고 묻자, 소크는 “글쎄요, 사람들 것이죠. 태양에 특허를 낼 건가요?”라고 답했다. 실제로 소크와 그가 속한 재단은 폴리오 백신에 대해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고, 이후 검토 결과 특허 요건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결정으로 인해 백신 제조법과 개념은 사실상 공공재처럼 취급되었고, 여러 제약사·공공기관이 자유롭게 생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특허를 취했다면 약 70억 달러 이상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산이 뒤늦게 나왔지만, 소크는 “과학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허 포기가 만든 ‘집단 면역’의 속도
폴리오 백신이 특허로 묶이지 않은 덕분에, 미국·유럽뿐 아니라 캐나다, 일본,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량 생산과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88년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이 세계 폴리오 퇴치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며 집단 접종을 확대한 결과, 1980년대 매년 수십만 건에 이르던 소아마비 마비 환자는 2020년대 들어 연간 수백 건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오늘날 야생 폴리오 바이러스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거의 퇴치 상태에 이르렀고, 많은 지역에서 소아마비는 교과서 속 질병으로만 남아 있다.

“과학은 인본주의 위에서 완성된다”
소크는 백신 성공 이후에도 부를 좇기보다 공공 연구에 전념했다. 1960년대에는 캘리포니아에 비영리 연구기관인 ‘소크 생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를 설립해 바이러스·면역·신경과학 등 기초 연구를 후원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과학적 성취는 자본의 독점물이 되어선 안 되며, 인류 전체의 건강과 복지에 봉사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러한 행보는, 지식재산권과 공중보건 사이 균형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 속에서 자주 소환되는 사례가 됐다.

백신 논쟁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이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특허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지자, 각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소크의 ‘태양 특허’ 발언을 다시 인용하며 공공재로서의 백신 개념을 환기했다. 물론 현대의 백신 개발은 수십억 달러의 민간 투자가 들어가는 만큼, 당시와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소크의 선택은 “과학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한 사람의 잠재적 부(富)보다, 전 세계 수억 명 아이들의 두 다리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결단은, 지금도 의료·과학계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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