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RCA 취소 후 가장 구체적인 진전, K9이 대안으로 부상
미 육군이 차세대 자주포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실질적 대안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를 전면에 올려놓았다. 미 육군은 최근 한화디펜스 USA와 공동 연구개발 협정(CRADA)을 체결하고, 미국 정부가 직접 설계한 155mm 58구경장 포신을 K9 플랫폼에 통합하는 연구개발에 공식 착수했다.
단순한 성능 평가를 넘어, 미군 요구 사양을 실제 체계에 적용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군사 전문 매체 더 디펜스 포스트는 14일(현지시각) “사거리 연장 자주포(ERCA) 사업 취소 이후 가장 구체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미 육군은 당초 ERCA(Extended-Range Cannon Artillery) 프로그램으로 차세대 장거리 화력을 구현하려 했지만, 기술적 난제와 일정 지연 끝에 사업을 중단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 육군은 한화를 포함해 BAE 시스템즈, 라인메탈, 엘빗 시스템즈,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복수 기업의 대안을 병행 검증 중이다.

58구경장 장포신으로 사거리 70km 달성 목표
이번 CRADA의 핵심은 사거리의 비약적 확대다. 기존 미 육군의 155mm 자주포 체계가 약 30km 수준의 유효 사거리를 보이는 데 반해, 58구경장 장포신과 차세대 탄약을 결합하면 최대 70km(약 43마일)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번 CRADA는 미 육군 전투능력개발사령부(CCDC) 산하 무기체계센터가 직접 참여해 미 정부 설계 포신을 K9 계열에 이식하는 것이 골자다. 미 정부가 직접 설계한 포신을 한국 플랫폼에 통합한다는 것은, K9의 기본 설계가 미군 요구 수준을 충족한다는 공식적인 인정이나 다름없다.
한화는 K9A2 계열을 기반으로 한 차륜형·궤도형 파생 모델까지 제시하며, 미군 요구에 맞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USA의 마이크 스미스(Mike Smith) 최고운영책임자(COO)는 “K9 포탑의 범용성과 확장성을 미 육군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사거리·발사속도·재보급 능력의 격차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K10 탄약운반차와 패키지 제안, 지속 화력 개념 충족
미 육군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플랫폼 단독’이 아닌 ‘운용 생태계’다. 한화는 K9과 함께 K10 탄약운반차를 패키지로 제안한다. K10은 최대 104발의 포탄을 적재하고 분당 12발을 자동으로 재보급할 수 있어, 장시간·고강도 화력 투사가 요구되는 현대전에서 결정적 우위를 제공한다.
이는 미 육군이 중시하는 지속 화력(Sustained Fires)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현대전에서 포병 전력은 단발 화력보다 장시간 지속적인 화력 투사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K9과 K10의 조합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검증된 솔루션이다.
자동화된 탄약 재보급 체계는 승무원의 피로도를 낮추고, 적의 대포병 사격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K10의 로봇팔이 포탄을 자동으로 K9에 전달하는 동안 승무원은 차량 내부에서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어 생존성이 크게 향상된다.

NATO 4개국 실전 운용, 미군 전개 지역에 이미 네트워크 구축
한화 K9의 또 다른 강점은 NATO 최전선에서의 검증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NATO 5개국 중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 4개국이 이미 K9을 주력 장거리 화력 자산으로 운용 중이다.
한화디펜스 USA의 마이클 콜터 대표는 “미 육군이 배치될 가능성이 있는 거의 모든 전구에 K9 운용 경험과 유지·보수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한다”며 “이는 다른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NATO 동맹국들과 동일한 자주포를 운용하면 상호운용성이 확보되고, 유사시 탄약과 부품의 공유가 가능해진다. 미 육군 입장에서는 새로운 무기 체계를 도입하면서도 동맹국들과의 군수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다. 이는 단순한 무기 성능을 넘어, 동맹 네트워크 전체의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바이 아메리칸 장벽 넘어, 미국 방산 시장 진입 가속화
이번 CRADA 체결은 한화가 미국 방산 시장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장벽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이정표다. 앞서 한화시스템은 보잉과 F-15EX 대화면 다기능 전시기(LAD)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미 공군 주력 전투기의 핵심 항전 장비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이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 실질적인 후보로 부상하면서, 한국 방산은 미군의 공군과 육군 핵심 전력에 동시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방산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단순 부품 공급자가 아닌 플랫폼 공급자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디펜스 USA는 미국 내 생산 시설 확충도 병행하고 있어, 향후 미 육군이 K9 계열을 선택할 경우 현지 생산을 통해 바이 아메리칸 요건을 충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K9, ERCA 이후 시대를 잇는 실질적 대안으로 부상
미 육군이 향후 어떤 체계를 최종 선택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BAE 시스템즈, 라인메탈 등 서방 방산 강자들도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다만 미 정부 설계 포신을 실제 K9 계열에 통합하는 단계까지 진입했다는 사실은, K9이 더 이상 ‘후보 중 하나’가 아니라 ERCA 이후 시대를 잇는 실질적 대안으로 올라섰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K9은 이미 전 세계 9개국에 수출되어 1,800문 이상이 운용 중인 글로벌 베스트셀러 자주포다. 폴란드에서는 계약 후 4개월 만에 초도 물량이 인도되는 납기 신뢰성을 입증했고, 에스토니아는 K9에 이어 천무까지 도입하며 K-방산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
글로벌 방산 시장의 ‘큰손’인 미국을 겨냥한 한화의 행보가 성공할 경우, 이는 단순한 수출 실적을 넘어 K-방산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군이 사용하는 자주포라는 타이틀은 전 세계 잠재 고객국들에게 가장 강력한 품질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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