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기념관 앞에 모인 캄보디아인들
2025년 12월 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는 재한 캄보디아인 70~80명(경찰 비공식 추산)이 모였다. 이들은 “태국이 한국산 T-50TH로 캄보디아를 폭격했다”,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우리 영토를 침략하는 데 쓰였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국방부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캄보디아는 평화를 원한다’, ‘훈련용 무기를 공격용으로 쓴 태국을 한국 정부와 국회가 규탄하라’고 외치며, 한국 정부 차원의 입장 표명과 방산 수출 관리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

“한국이 태국에 준 훈련기가 우리를 폭격했다”
시위의 직접적 배경은 태국 공군이 2025년 12월 24일 캄보디아 바탐방주 바난 지역에 대한 공습에 한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TH를 투입한 사건이다. 태국 공군 4비행단 401비행대 소속 T-50TH는 프놈 삼포브 일대 무기 저장시설을 목표로 폭탄 4발을 투하한 것으로 알려졌고, 캄보디아 측은 이를 ‘영토 침공’이자 ‘민간인 피해를 낳은 폭격’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당시 공습에는 태국 공군의 F-16, 그리펜 전투기와 함께 T-50TH가 편대에 포함돼 정찰·타격 임무를 분담한 것으로 보도됐다. 항공 전력이 거의 없는 캄보디아는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현지에서는 “한국산 무기까지 동원해 우리를 공격했다”는 여론이 번졌다.

‘훈련기’에서 ‘경공격기’로…T-50TH의 실전 투입
문제가 된 T-50TH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를 태국 요구에 맞게 개량한 수출형으로, 기본적으로 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기이지만 필요 시 외부 무장을 장착해 경공격 임무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태국은 2015년부터 이 기종을 도입해 공군 주요 훈련·경공격 플랫폼으로 운용해 왔고, T-50TH의 실전 공습 투입은 이번이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 시큐리티 아시아’ 등은 태국 공군 고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T-50TH가 훈련 플랫폼에서 실전 운용 가능한 전투 임무 플랫폼으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최고 속도 마하 1.5급의 초음속 성능에 정밀 유도폭탄을 결합하면서, 사실상 경량 전투기 수준 전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이미 사용된 한국산 활강폭탄 KGGB
T-50TH 논란 이전에도 태국은 한국산 정밀유도 무기를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에 투입해 왔다. 2025년 여름, 태국 공군은 한 차례 국경 지역 작전에서 LIG넥스원이 개발한 KGGB(한국형 활공 유도폭탄)를 사용해, 방공포 사거리 밖에서 캄보디아 측 목표를 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KGGB는 기존 일반 폭탄에 유도·날개 키트를 부착해 수십 km 밖에서 활공하며 목표를 정밀 타격할 수 있게 만든 무기로, 태국 공군은 국경 강대 강을 사이에 둔 교전에서 이 무기를 활용해 ‘위험 구역 밖 타격’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해외 매체가 KGGB를 ‘한국산 미사일’로 잘못 표기하며 공습 소식을 전해, 현지에서는 한국 무기의 이미지가 더 자극적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한국은 잘못이 없다”는 시각과 “윤리적 책임” 논쟁
국내 여론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실제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은 태국 정부·군이지, 정식 계약으로 무기를 수출한 한국이 공격 책임을 질 수는 없다”며 캄보디아인들의 항의 대상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또 “같은 논리라면 세계 모든 방산 수출국이 각국 분쟁마다 피습국 집회에 시달려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분쟁지역 사용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수출 조건·사용 제한 조항을 더 엄격히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 방산 수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우리 무기가 어느 전장에서, 누구를 향해 쓰이고 있는지’를 더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산 수출 확대와 윤리적 통제 사이의 딜레마
한국은 최근 K-방산 수출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밀어붙이며 전차·자주포·전투기·장갑차 등 대형 무기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켜 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T-50/FA-50, KGGB 같은 항공 플랫폼·유도무기는 동남아·중동·동유럽 시장에서 ‘가성비 좋은 실전 전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방산 업계와 정부는 “수출 확대는 국가 안보·경제에 큰 이익이지만, 동시에 국제 분쟁에 우리 이름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상황도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며 윤리적·인도법적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사용국에 대한 분쟁 리스크 평가, 인권·국제법 준수 여부와 연동한 수출 심사, 사후 사용 모니터링 체계”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휴전했는데 왜 한국이 욕을 먹느냐”는 질문
태국·캄보디아 양국은 국제사회의 중재와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일단 군사 교전을 중단하고 휴전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전쟁기념관 앞 집회처럼 분쟁의 상처와 분노는 한국 국내에서도 여진을 낳고 있다. “실제 폭격 명령을 내린 태국 대신, 무기를 만든 한국이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것은 감정의 표출일 뿐”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반대로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을을 초토화한 비행기에 ‘KOREA’ 스티커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K-방산’의 다음 과제는 “책임 있는 수출국” 이미지
이번 사건은 한국이 더 이상 소규모 무기 수입국·개발국이 아니라, 국경 분쟁과 지역전에서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전력’을 제공하는 수출국이 됐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무기 수출을 둘러싼 윤리·외교·이미지 관리가 국가 브랜드와 직결되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산 무기 때문에 “졌다”고 느낀 나라의 국민이 서울까지 와서 항의하는 상황 자체가, 앞으로 한국이 어떤 기준과 절차로 방산 수출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