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K9 자주포로 포병 체계 갈아엎다
2025년 7월, 베트남 국방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9 썬더 155mm 자주포 20문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약 2억 5,000만 달러, 한화 약 3,500억 원 규모로, K-9이 동남아 국가에 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 육군은 지금까지 미국제 M114 155mm·M101 105mm 견인포와 소련제 2S3 아카치야 자주포 등 122·130mm 계열 화포를 운용해 왔지만, 이번 계약으로 나토 표준 155mm 포탄을 사용하는 서방형 포병 체계로 본격 전환을 시작했다. 베트남 언론과 군 관계자들은 “장거리 고속 기동이 가능한 K-9은 남중국해 연안·섬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 기지화를 억제할 핵심 카드”라며, 특히 하노이 인근 204포병여단에 우선 배치해 전략 거점 방어에 활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필리핀, FA-50로 ‘하늘’부터 갈아엎다
K-방산의 영향력은 같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인 필리핀에서 먼저 나타났다. 필리핀 공군은 2014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PH 경공격기 12대를 도입한 데 이어, 2025년 6월 추가로 12대를 더 주문해 총 24대로 전력을 두 배로 늘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약 7억 달러 규모의 이번 계약으로 도입되는 2차 물량은 공중급유 능력, AESA 레이더, 향상된 공대공·공대지 무장을 갖춘 Block 20 버전으로, 필리핀 공군의 주력 전력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FA-50은 이미 2017년 필리핀 남부 ‘마라위 전투’에서 정밀 폭격 임무를 수행하며 실전 검증을 마쳤고, 이후 호주 ‘Pitch Black’ 다국적 연습에 참가하는 등 대외훈련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필리핀은 차세대 다목적 전투기(MRF) 사업에서도 KF-21 보라매를 유력 후보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공군 전력 전반이 ‘K-라인’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도 ‘하늘은 FA-50’로 수렴
말레이시아는 2023년 랑카위 LIMA 방산 전시회에서 FA-50 Block 20 18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동남아 3번째 FA-50 운용국이 됐다. 말레이시아 공군은 2055년까지의 CAP 55 계획에 따라 총 36대의 경전투기를 확보할 계획인데, 1차 물량 18대에 이어 2차 물량도 FA-50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KAI와 T-50/FA-50 계열 훈련기·경전투기 도입, 대우조선해양과 1,400톤급 잠수함 공동 제작, 한국과의 KF-21 공동개발 파트너십 등으로 사실상 ‘공군·해군 핵심축’을 한국과 묶는 행보를 보여 왔다. 이들 국가는 모두 중국과 직접 영유권 분쟁을 겪거나, 남중국해·말라카 해협을 둘러싼 전략 환경에서 중국 해군과 마주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KF-21 보라매, 다음 단계는 ‘동남아 하이엔드 전투기’
KAI가 개발 중인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에 대해서도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FA-50 Block 20을 도입하면서 “장기적으로는 KF-21이나 차세대 단발 전투기로 F/A-18D·Su-30MKM을 대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청사진을 공식 문서에 담았다.
KAI와 말레이시아 공군은 FA-50과 KF-21을 조합해 ‘전술기+제공전력’ 구조를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KAI는 KF-21이 5세대 플랫폼 기반으로 향후 6세대 수준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필리핀 역시 FA-50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KF-21을 현지 환경·예산에 맞춰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다목적 레이더·장거리 공대지 무장 통합 등에서 “미국·유럽제보다 제약이 적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왜 중국이 아닌 한국인가…동남아가 선택한 4가지 이유
동남아 각국이 중국제 무기가 아닌 한국산 장비로 무장하는 데는 몇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다. 첫째, 기술력 대비 가격 경쟁력이다. K-9·FA-50·천무 같은 한국산 무기는 동급 서방·러시아 제품 대비 60~80% 수준 가격에 제공되면서, 성능·신뢰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우위인 평가를 받는다. 둘째, 정치·제재 리스크가 낮다. 중국·러시아산 무기는 품질·부품 공급 불안과 함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가 우려되고, 미국·유럽산은 의회 승인·인권 조건 등 정치 변수가 많다.
한국은 미국 동맹국이면서도 수출 상대국의 내정에 비교적 간섭이 적고, 제재 대상이 아닌 이상 무기 공급이 중단될 위험이 적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셋째, 현지 조립·정비·교육을 포함한 패키지 계약이다. 한국 업체들은 동남아 현지에 MRO(정비·수리·개량) 센터·교육센터 설립을 제안하며, 단순 구매가 아니라 ‘함께 키우는 생태계’를 약속한다. 넷째, 한반도 유사 전장 환경에서 검증된 운용 경험이다. 산악·해안·도시가 혼재한 환경에서 작동 검증을 마친 체계라는 점은, 섬과 해안·정글이 많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신뢰를 준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 ‘K-방산 포위망’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화, 항모·잠수함 확대를 통해 동남아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넓히려 해 왔다. 그런데 주변국들이 한국산 자주포·경전투기·잠수함·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하면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원가 싸고 정치적으로 압박력 높은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던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베트남이 K-9을 도입하고,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가 FA-50과 잠수함·초계기까지 한국산으로 채우는 순간, 중국 해군·공군이 남중국해·말라카 해협에서 맞닥뜨릴 전력 구성이 빠르게 복잡해진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주변에 미국산뿐 아니라 ‘한국산 서방형 체계’가 둘러싸이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에, 외교·경제·정보전 수단을 동원해 한국-동남아 방산 협력을 견제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방산, 동남아 미래 안보 지형의 숨은 설계자
향후 10~20년 동안 동남아 방산 시장은 중국·미국·유럽·한국이 뒤섞인 ‘4강 경쟁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단순 판매가 아니라, 현지 생산·공동개발·정비 생태계 구축까지 제안하는 국가는 아직 많지 않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베트남에 현지 파트너와 합작공장·MRO 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친한 파트너십’을 앞세운 맞춤형 모델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중국의 간섭과 러시아 의존에 피로감을 느낀 동남아 국가들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수록, 그들의 포병·공군·해군의 상당 부분은 자연스럽게 ‘메이드 인 코리아’로 채워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지도로만 보면 중국의 영향권처럼 보이는 이 지역 안보 지형의 뒷면에는 조용히 설계자로 참여한 한국 방산의 흔적이 빼곡히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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