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도에 쏟아진 170발, 전쟁 같은 오후 2시 34분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은 연평도 일대에 170발 안팎의 포탄을 퍼부으며 민가와 군사시설을 가리지 않은 기습 포격을 감행했다. 불과 몇 분 사이 섬 곳곳에 화재가 번지고, 주민 1500여 명 중 대부분이 피난선에 오르는 등 평화로운 어촌은 전쟁터로 변했다. 이 포격으로 해병대 병력과 민간인을 포함해 4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포탄 떨어진 K9 진지, “탄도 없고, 불발탄도 박혀 있었다”
당시 연평도에 배치된 K9 자주포 6문 중 상당수는 오전 사격훈련을 막 끝낸 직후여서, 예비탄이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북한 포탄이 진지 주변에 떨어지며 두 대는 직접 피해를 입어 작동 불능이 됐고, 한 대는 불발탄이 포신에 걸려 사격이 어려웠다. 그러나 포병 장병들은 대피 대신 포실로 뛰어들어 고장 부위를 수리하고, 포신을 열어 불발탄을 제거하는 작업을 스스로 감행했다는 증언이 군 안팎에서 이어졌다.

13분 만의 반격, 80발로 되갚아준 해병 포병
해병대 포병은 포격 개시 13분 뒤인 14시 47분, 복구한 K9 세 문으로 북한 해안포 진지에 대한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첫 사격에서 약 50발, 이후 추가 교전 과정에서 30발을 더 쏘아 총 80발의 포탄을 북한 측 목표에 투사했다. 미국산 대포병 레이더가 초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확한 원점 대신 북측 진지·막사 일대를 중심으로 사격했지만, 이후 탐지·수정 절차를 거치며 방사포 진지 인근으로 조준을 좁혀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중률 낮았다” 논란과 실제 사격 의도
사후 여론에서는 “북한이 쏜 170발에 비해 80발 대응은 부족했다”, “탄착이 바다와 산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군 안팎 분석에 따르면, 당시 연평부대는 반격 시 북한 해안포·방사포의 사후 사격 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포병 진지 뒤편·인근에 탄착을 집중시키는 전술을 택했다는 평가가 있다. 실제 대포병 상황에서 방사포 차량·탄약고 주변을 타격하면, 방열·재장전이 어려워져 추가 포격을 상당 부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재·정전·탄약고 위기 속에서도 이어진 사격 준비
포탄이 쏟아지던 사이 연평도 내 소방서와 일부 군 시설에도 화재가 발생하고, 정전으로 탄약고 셔터가 내려가 포탄 반출이 막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군인들은 절단 장비로 셔터를 뜯어내 탄약을 꺼내고, 민·군 합동으로 화재 진압에 나서는 한편, 포반별로 잔여탄을 모아 K9에 재장전했다는 증언이 이후 언론·군 기록에 소개됐다. 이 같은 과정이 10여 분 만에 이뤄졌기에, 첫 반격 사격이 14시 47분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K9 세 문으로 버틴 ‘전투 지속 능력’
연평도에 배치된 여섯 문의 K9 중 당시 실제로 대응 사격을 한 것은 세 문뿐이었다. 두 문은 피격으로 손상됐고, 한 문은 불발탄으로 포신이 막힌 상태여서 실전 투입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남은 세 문이 80발을 연속 발사하며 방사포·해안포 진지에 압박을 가한 것은, 실질적으로 ‘반 쪽 포대’로 전투를 치르면서도 포탄 운용과 사격 속도를 유지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사자 두 명, 군인·민간인 네 명이 남긴 흔적
이번 포격으로 해병대 서정우 하사(당시 24세), 문광욱 일병(당시 20세)가 사격 준비·대응 과정에서 피격돼 끝내 순직했다. 군인 외에도 섬에서 공사 중이던 민간인 두 명이 숨지고, 군인 16명·민간인 다수가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장례식과 추모행사에서 두 전사자는 “포탄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연평의 해병”으로 추모됐고, 연평도에는 그들을 기리는 추모비와 전적지가 조성됐다.

정부가 ‘전투 승리’로 규정한 이유
사건 2주년을 앞둔 2012년, 한국 국방부는 연평도 포격을 ‘전투 개념상 승리’로 평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이 먼저 민가와 군 기지를 타격했지만, 한국군이 즉각 반격해 북한 해안포 진지에 피해를 입히고 추가 도발을 차단했으며, 이후 전면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통제에 성공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전사자와 피해가 있음에도, 제한된 전력과 불리한 여건 속에서 ‘반격과 억제’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사례로 본 셈이다.

“김정은 과시용 도발”이 부른 역풍
연평도 포격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은이 공식 부상한 이후, 내부 결속과 군부 장악을 과시하기 위한 도발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군의 대응의지를 확인시켜 주고, 한·미 연합훈련 강화와 K9 개량·섬 지역 방어태세 보완 등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연평도에선 지금도 매년 11월이면 당시 포연 속에서 싸웠던 해병대원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며, “13분 만의 반격”은 한국 포병·해병 전통 속에서 상징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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