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대지진이 초토화됐다
2023년 2월 6일 규모 7.8 지진으로 튀르키예·시리아에서 5만 명 이상 사망했다. 하타이·안타키아 등 지역이 폐허가 됐고 여진이 수백 회 이어졌다. 골든타임(72시간) 후에도 생존 희망이 희박했다.
구조대 부족으로 현지 절망이 깊었다. 한국은 지진 발생 직후 즉시 대응에 나섰다.

한국이 군 수송기로 구호대를 급파했다
지진 하루 만인 2월 7일 공군 KC-330 수송기로 118명 구호대를 파견했다. 소방청 62명, 국방부 49명, 외교부·코이카 등 역대 최대 규모였다. 가지안테프 공항 도착 후 안타키아 베이스캠프 설치했다.
의약품·구호물품을 싣고 하타이주 수색에 돌입했다. 3진까지 총 121명이 투입됐다.

6·25 참전국 은혜를 결코 잊지 않았다
튀르키예는 1950년 한국전쟁에 1만5000명 병력을 파견한 16개국 중 하나였다. 최악의 혹한에서 한국군과 싸웠고 966명이 전사·부상됐다. “어머니 나라”로 불릴 만큼 헌신했다.
한국은 이 은혜를 새기며 “보답의 시간”이라 했다. 구호대장 원도연 국장은 “양국 우정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구조 현장에서 기적을 연출했다
골든타임 지난 안타키아에서 8명 생존자를 구조했다. KDRT 출범 후 최다 기록으로 70대 남성과 2세 여아를 구출했다. 부서진 건물 46곳 수색하며 시신 19구 수습했다.
여진 속 위험 무릅쓰고 73시간 만에 구조 성공. 현지인들은 “한국 기적”이라 불렀다.

현지인들이 한국 군인에게 눈물 박수를 보냈다
구호대 도착 시 현지인들이 포옹하며 환호했다. 철수 때 수백 명이 공항에 모여 박수와 함성으로 감사 표시했다. “한국 덕에 살았다”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비행기 안 구조대원들은 눈물바다가 됐다. 전 국민적 감동으로 국내서도 응원 물결이 일었다.

우정마을 조성으로 복구를 이어갔다
구조 후 코이카 주도로 ‘한국-튀르키예 우정마을’을 건설했다. 1000만 달러(143억 원) 투입해 1572명 이재민 주택 제공했다. 정부·NGO 협력으로 2주 만 승인됐다.
2025년 하타이 주정부에 이양. 주민 79%가 “삶 개선” 평가하며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양국 우정이 영원한 유산이 됐다
튀르키예는 한국 성장을 인정하며 “형제국”이라 칭송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대 정신 재확인”이라고 했다. 구조 성공으로 한국 국제 위상이 높아졌다.
현재까지 지원 지속. 과거 받은 도움 갚은 사례가 세계 인도주의의 모범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