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르스크에 투입됐던 북한 공병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전이 격화된 뒤 북한은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공병 전력을 쿠르스크 일대로 파견했다. 이 부대는 러시아군이 되찾은 접경 지역에서 지뢰와 미폭발탄을 수색·제거하는 임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측 설명에 따르면 북한 공병은 농경지·마을·산림지대 등에 촘촘히 남아 있던 폭발물을 제거해 통행과 재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러시아는 이를 “형제국의 지원”이라며 공개적으로 치켜세웠다.

폭발물 160만개 제거 후 ‘돌연 귀국’
쿠르스크 주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 전문가들이 약 160만 개의 폭발 장치를 파괴했다”고 밝히고, 이 작업이 마무리된 뒤 북한 공병부대가 지난해 12월 본국으로 귀환했다고 공개했다. 그 결과 15만 헥타르가 넘는 지역에서 지뢰와 폭발물이 제거됐다고도 설명했다.
쿠르스크 현지 언론과 러시아 통신사 보도에 따르면, 이 공병부대는 철수 직전까지도 국경 인근에서 지뢰 탐지와 폭발물 처리 작업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귀국 과정과 시점은 북한이 아닌 러시아 지방정부 입을 통해서만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전선은 비상인데… 러시아에 남은 ‘구멍’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교전이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 공병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 당국은 자국 공병과 비상사태부 인력, 민간 전문가들을 추가 투입하고 있지만, 북한 인력이 맡았던 물량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쿠르스크 전역은 우크라이나가 2024년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던 지역으로, 아직도 곳곳에 미수거 폭발물이 남아 있는 상태다. 북한 공병 철수 이후 현장에서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현지 증언도 전해진다.

북한 내부 반발과 ‘먹튀’ 논란
북한이 공병부대를 서둘러 불러들인 배경에는 내부 여론 악화와 보상 문제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이 대규모 희생을 치렀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나라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만 죽는다”는 불만이 퍼졌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가 약속했던 경제·군사적 보상이 기대에 못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사기술 이전과 에너지 지원, 현금 보상 등이 충분히 이행되지 않았고, 현지에 파견된 병력에게 돌아가는 몫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불만 속에서 김정은이 ‘성과만 챙기고 사람은 뺀’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붙는다.

김정은의 계산된 철수 카드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쿠르스크 작전이 성공적으로 종결됐다”는 식으로 파병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주장해 왔다. 해당 지역 재탈환·안정화라는 명분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보고, 더 이상 위험 부담을 안고 장기 파병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러시아에 일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북·러 관계 전체를 흔들지는 않겠다는 신호라는 분석도 있다. 인명 피해가 큰 전투 병력 대신, 향후에는 재건·건설 인력 파견 등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고 경제적 이익이 분명한 분야에만 선택적으로 참여하려는 방향 전환이라는 것이다.

북·러 밀월의 균열이 될까
이번 북한 공병 철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러시아에 사실상 먹튀를 당한 북한이 선을 그은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전황이 길어지는 가운데 러시아가 약속한 지원이 지연되자, 김정은이 자국 내부 비판을 의식해 가장 눈에 띄는 상징 부대부터 빼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군사 협력의 축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북한산 포탄과 미사일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북한 역시 러시아를 통한 제재 회피·외화 확보 통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공병 철수 뒤에도 군수물자 공급과 정보 협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남은 과제와 향후 관전 포인트
북한 공병 철수는 단순한 인력 재배치가 아니라, 김정은이 전쟁 장기화 속에서 ‘위험 대비 실익’을 다시 따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전사자 증가, 보상 불만, 내부 여론을 고려한 조정 카드가 실제로 도입된 셈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이 공병 대신 건설·재건 인력을 다시 보낼지 여부, 둘째, 러시아가 추가 군사기술 이전이나 에너지 지원으로 불만을 달랠지, 셋째, 서방의 추가 제재 속에 북·러 군사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재편될지다. 이번 ‘쿠르스크 철수’가 북·러 밀월의 균열이 될지, 더 계산된 동맹의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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