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안보를 미끼로 한 ‘통일 패키지’ 제안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을 향해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통일은 대만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전력·천연가스·원유 공급을 포함한 ‘에너지 패키지’를 사실상 통일 유인책으로 제시했다. 총성 한 번 울리지 않는 이 제안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만의 구조적 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새로운 형태의 압박 카드로 평가된다.
에너지 97% 수입·LNG 비축 2주 남짓…대만의 치명적 구조
대만은 전체 에너지 수요의 97%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발전 연료의 상당 부분을 액화천연가스(LNG)에 맡기고 있다. 문제는 섬나라 특성상 대규모 저장 시설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으로, 여러 에너지 분석에 따르면 대만의 LNG 비축 여력은 통상 11~14일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중국이 군사 봉쇄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규모 해상훈련·검문검색 등을 이유로 LNG 운반선 통행만 지연시켜도, 2주 이내에 대만 전역이 전력 마비·공장 가동 중단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TSMC 등 대만 반도체 공장들은 수 분의 정전만으로도 수조 원대 웨이퍼 손실을 볼 수 있어, 중국의 ‘에너지-통일 패키지’가 경제·산업 전반을 겨냥한 고도의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군함 대신 가건물·부표” 서해로 번지는 회색지대 전술
이 같은 압박은 대만 해협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동북아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동중국해·서해에서 군함 대신 해양조사선·어선·준설선·해양 관측 부표 등을 앞세워 해상 관할권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회색지대 전술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인근에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해양 관측기기·가건물 형태의 구조물은 명목상 기상·해양 연구를 위한 것이라 주장되지만, 실제로는 해당 해역에 대한 지속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향후 “중국이 상시 관리해 온 구역”이라는 논리를 쌓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군함이 아닌 민간선·연구 시설을 동원하면 상대국이 군사력으로 강하게 대응하기 어려워, 안보 피로도만 높이는 전형적인 회색지대 전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입장에서 ‘최악’인 이유…에너지·해상교통로 동시 노출
한국 역시 전체 에너지의 약 93%를 수입에 의존하며, 원유의 90% 이상이 말라카 해협과 대만 동부 해역을 거쳐 들어온다. 여기에 컨테이너·반도체·정유 제품 등 핵심 수출입 화물 상당수가 대만 해협·남중국해 인근 항로를 사용하고 있어,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해상 통제·검문검색·기뢰 위협 등을 가할 경우 한국의 에너지·물류망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일보·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대만 해협이 봉쇄되거나 항로 위험이 커질 경우 한국 정유·발전 시스템과 통신망까지 동시다발적인 사이버·물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 중국이 서해에서 ‘연구용 가건물·부표’를 통해 해상 통제력을 넓혀 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해양 주권과 동시에 에너지·물류 lifeline까지 압박할 수 있는 지렛대를 축적하는 셈이라는 평가다.

군사력 키우는 것만으론 안 통하는 ‘회색지대’
문제는 이런 방식의 압박이 전통적인 군사 억제력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중국이 사용하는 선박·시설 상당수는 민간 명목을 내세우고 있어, 이를 군사적으로 강경 대응하면 국제 여론에서 한국이 오히려 과잉 대응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방치하면 “수년간 중국이 실질 지배해 온 해역”이라는 주장이 누적돼, 훗날 해양 경계 협상이나 분쟁 시 중국의 법적·외교적 입장이 유리해질 수 있다. 서울대·국책연구기관 보고서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이 군사·외교·법률·경제를 동시에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인 만큼, 단순한 ‘군함 대 군함’ 체제의 대비만으로는 대응이 어렵고, 해양 관할권 강화·국제법 활용·동맹국과의 정보 공유 체계 등 복합적인 대응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에너지·해양·동맹을 묶는 ‘종합 방어’
전문가들은 대만 해협과 서해에서 전개되는 중국의 새로운 압박 패턴이 한국에 세 가지 과제를 제기한다고 본다.
첫째, 대만과 달리 한국은 원전·LNG 저장 인프라를 통한 2개월 안팎의 비축 여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살려,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와 비상 비축 확대를 통해 ‘에너지 무기화’ 시도를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서해·동중국해에서의 회색지대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해양조사·해양경찰·해군이 정보를 공유하는 통합 해양 감시체계와, 국제해양법에 근거한 외교·법적 대응 매뉴얼을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만 해협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한·미·일 및 역내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해상교통로 보호, 에너지·원자재 우회 수송로 확보, 핵심 산업(특히 반도체) 운영을 위한 비상 공급망 계획을 사전에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성이 아닌 가스선과 가건물, 부표로 시작된 중국의 압박 게임 속에서, 한국이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해양·외교를 아우르는 ‘종합 방어 전략’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향후 동아시아에서의 생존과 기회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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