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제3기 겨레얼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빌딩 숲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특별한 공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현대 도시의 시간과 다르게, 이곳에는 조선 시대 임금님들의 숨결과 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선릉과 정릉입니다. 도심 속 푸른 녹지를 천천히 거닐며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느끼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되새기고자 겨레얼살리기 서포터즈로서 직접 이곳을 방문하고 왔답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민족의 긍지인 겨레얼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 것은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중요한 사명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이죠. 그럼 500년 조선 왕조의 숭고한 얼이 살아 숨 쉬는 선정릉으로 저와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도심 속 푸른 오아시스,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입구
선릉과 정릉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임을 알리는 웅장한 표지판이 관람객을 반겨줍니다. 이곳은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과 그의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가 잠든 선릉, 그리고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 잠든 정릉이 한곳에 모여 있는 유서 깊은 사적입니다.
성인 기준으로 1000원이라는 저렴한 요금으로 입장할 수 있어 도심 속 훌륭한 휴식처이자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매표소 창구 상단에 표시된 관람 안내판을 보면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이라고 적혀 있으니 방문하실 때 참고하시면 좋겠죠.
입구 쪽에 세워진 거대한 종합안내도를 살펴보면 능역이 강남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선릉이 조성되었고,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동원이강릉 형태로 능이 완성되었습니다.
중종의 정릉은 원래 1544년 세상을 떠난 후 경기도 고양에 조성되었다가, 1562년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에 의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내판에도 나와 있듯이 선릉과 정릉은 1970년대 강남 일대가 급격하게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도심 속에서 푸른 녹지를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왕릉이 되었습니다.
표를 끊고 내부로 들어가면 각 능으로 향하는 거리를 알려주는 갈색 표지판이 보이고 흙길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나타납니다.
파란만장한 시대를 겪어낸 중종의 안식처, 정릉
매표소를 지나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중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정릉입니다. 중종은 1506년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폭군 연산군이 폐위된 후,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이 18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임금입니다. 조광조라는 걸출한 인재를 등용해 도학정치를 펼치며 나라를 바르게 이끌고자 했으나, 결국 기묘사화라는 피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던 참으로 혼란스럽고 파란만장한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군주였습니다.
정릉 능역 입구에 다다르면 이곳이 신성한 성역임을 알리는 붉은색 기둥의 홍살문이 우뚝 서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홍살문을 통과하면 정자각까지 네모난 돌이 깔린 참도가 길게 이어지는데요, 이 참도는 다시 두 갈래의 길로 나뉘어 있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제향을 지낼 때 혼령을 위한 향이 지나가는 향로라고 부릅니다. 오른쪽의 약간 낮은 길은 제향을 지내러 온 임금이 걷는 어로, 즉 임금길입니다. 관람객들은 예를 갖추어 왼쪽의 높은 향로를 밟지 않고 반드시 오른쪽 어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답니다. 우리 조상들의 엄격한 예법과 겨레얼이 길 하나에도 깃들어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면 제례를 올리는 건물인 정자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정자각 위로 오르는 돌계단 역시 두 종류로 명확히 나뉘어 있는데, 혼령이 오르는 신계와 왕이 오르는 어계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신계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안내 팻말이 있고, 어계에는 이 계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어 관람객이 실수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어계를 통해 정자각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각종 제상과 향상들이 노란색 보자기로 덮여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자각 밖으로는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이 굳건하게 서 있으며, 저 멀리 푸른 잔디로 덮인 언덕 위로 봉분이 보입니다. 그 주변을 수십 년,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마치 임금을 호위하듯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장엄함이 느껴집니다.
고요하고 평온한 어머니의 품, 정현왕후릉
정릉을 지나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선릉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현왕후릉이 그 고요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정현왕후는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이자 앞서 만나본 중종의 친어머니입니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쫓겨난 후 왕비의 자리에 올라, 훗날 반정을 통해 왕이 되는 진성대군을 낳은 훌륭한 인물이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혜롭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왕비의 삶이 엿보입니다.
정현왕후릉 주변에는 무석인과 문석인을 비롯해 능을 수호하는 다양한 석물들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서 있습니다. 큼직하고 둥글둥글한 곡선을 자랑하는 석양과 석호 조각상들은 능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며, 혼유석과 정교하게 조각된 장명등까지 능 주변을 호위하듯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푸른 잔디로 곱게 덮인 둥근 봉분 주위로는 정교한 난간석이 둘러져 있어 왕비의 무덤이 가지는 높은 품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말없이 서 있는 돌조각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조선 시대의 어느 평화로운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이 듭니다. 이러한 고요함과 평화로움 속에서 우리는 이 땅을 지켜온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고 민족의 뿌리와 겨레얼의 진정한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답니다.
조선 사회의 기틀을 완벽히 다진 성종대왕릉, 선릉
정현왕후릉에서 다시 숲길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드디어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능역에 도착합니다. 안내판의 입체적인 모형과 설명을 보면 선릉은 동원이강릉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정자각을 중심에 두고 서로 다른 언덕 위에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조성된 독특한 구조를 말합니다.
성종 임금은 이룰 성 자를 쓰는 그 이름의 의미 그대로, 조선이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제도와 문물을 완성한 위대한 성군으로 불립니다. 특히 성종 16년인 1485년에 조선의 헌법이자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반포함으로써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확고한 기틀을 다졌습니다. 학문을 장려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국가의 기강을 올바르게 세우고자 노력했던 성종의 어진 마음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현대 사회에 다시 피워내야 할 숭고한 겨레얼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종대왕릉 앞 언덕 아래에도 붉은 홍살문이 경건하게 서 있고, 그 뒤로 정자각까지 참도가 곧게 이어져 있습니다. 웅장하고 널따란 언덕 위로 봉분이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능역 앞 안내판에는 능의 상세한 구조뿐만 아니라 제례에 사용되는 각종 제기류와 진설도 등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어 능을 찾는 관람객들이 조선 왕릉의 제례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능역 위에서 뒤를 돌아보면 도심의 높다란 빌딩 스카이라인과 조선 왕릉의 푸르고 부드러운 능선이 오묘하게 대비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풍경은 오직 이곳 선정릉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랍니다.
선릉 정릉 역사문화관에서 마주한 뼈아픈 수난의 상처
각 능역을 모두 둘러보고 마음속에 큰 울림을 안은 채, 발걸음을 돌려 출구 근처에 있는 선릉 정릉 역사문화관으로 향했습니다. 빌딩 숲 속 왕들의 안식처, 서울 선릉과 정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아담한 전시관은 선정릉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역사적 변천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입니다.
전시관 내부의 영상실에서는 선정릉이 강남에 조성된 복잡한 과정과 그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중종의 정릉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544년 중종이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원래는 경기도 고양에 있던 그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가 훗날 남편인 중종 곁에 함께 묻히고 싶은 욕심에 풍수지리를 핑계 삼아 정릉을 억지로 파헤쳐 1562년에 지금의 강남구 삼성동 자리로 옮겨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릉을 옮긴 강남 일대의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기는 바람에, 1565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정작 그녀는 중종 옆에 묻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태릉에 홀로 묻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이 빚어낸 씁쓸한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이곳 역사문화관에서 확인한 가장 가슴 아프고 참담한 역사는 바로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의 일입니다. 영상에서는 이곳 선정릉을 임진왜란의 치욕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장소라고 단호하게 설명합니다. 왜군이 한양을 점령했을 당시, 그들은 왕릉 안에 수많은 보물이 있을 것이라 착각하여 성종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 봉분을 무참히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도굴에 그치지 않고 왕의 재궁에 불을 지르고 옥체를 훼손하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혼과 존엄성이 담긴 성스러운 왕릉이 적군에 의해 형체도 없이 짓밟힌 이 사건은 조선 왕조는 물론 온 백성의 자존심에 깊고 영원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런 뼈아픈 수난의 역사를 영상을 통해 다시 확인하며, 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국권을 잃었을 때 우리의 문화유산과 겨레얼이 얼마나 비참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치욕을 결코 잊지 않고 우리의 굳건한 정신을 다시 세우며 후세에 제대로 전하는 것이야말로,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엄중한 숙제일 것입니다.
경건한 예법과 마음가짐이 깃든 공간, 재실
역사문화관을 나와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정릉으로 가는 길목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재실입니다. 재실은 제례
를 지내기 전 제관들이 능역에 미리 도착하여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고 제례를 정성껏 준비하는 경건한 장소입니다. 평소에는 종9품 벼슬인 참봉 등의 능 관리 관원들이 이곳 재실에 상주하면서 왕릉과 그 주변 숲을 매일같이 보살폈다고 합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재실의 주요 시설로는 제향에 쓰일 귀한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주관하는 전사청, 그리고 신성한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행랑채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직접 바라본 재실 건물은 궁궐이나 사찰처럼 화려한 단청을 칠하지 않아 겉모습은 수수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한옥 고유의 단아하고 묵직한 멋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외형보다는 조상을 모시는 내면의 맑은 정성과 예의범절을 훨씬 더 중시했던 우리 선조들의 깊고 곧은 철학과 진정한 겨레얼이 고풍스러운 나무 기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방문기를 마치며
수많은 자동차와 고층 빌딩이 가득 메운 강남 도심 한복판에서, 수백 년 전 조선 임금들의 안식처를 흙길을 밟으며 걷는 경험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특별하고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경제 성장과 화려한 외형의 발전에만 치중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쉬운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이 굳건히 지켜오고 남겨준 숭고한 정신적 유산과 겨레얼을 되새기는 일은 국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단순히 공원을 산책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선릉과 정릉 나들이였지만, 능역 곳곳을 살피고 뼈아픈 도굴의 역사까지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도 결코 완전히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라를 재건했던 우리 민족의 질긴 생명력과 혼을 다시 한번 가슴속 깊이 확인하는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시간을 내어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이곳 선정릉의 고즈넉한 돌길을 걸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곳곳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 속 이야기와 우리 민족의 굳건하고 자랑스러운 정신을 함께 느껴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겨레얼살리기 서포터즈로서 앞으로도 우리 곁에 숨 쉬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의 가치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널리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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