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에서 죽느니 점령하에 살겠다”는 세대의 등장
독일 청년들 사이에서 “러시아와 전쟁 나면 싸우기보다 그냥 점령당하겠다”는 식의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는 건, 단순한 막말이 아니라 세대 감정의 단면이다. 2차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유럽 안보의 기둥’ 역할을 해 온 독일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내 삶이 먼저”라는 인식이 대세가 되었다는 점은 유럽 전체 안보 구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국가–안보–희생’의 연결 고리가, Z세대에겐 설득력을 잃어가는 중인 셈이다.

연금에 빨려 들어가는 예산, “우린 기성세대의 보험료냐”는 분노
이 냉소의 바닥에는 경제 구조에 대한 깊은 좌절이 깔려 있다. 독일 연방 예산의 약 4분의 1이 노년층 연금으로 들어가면서, 청년들은 자기 세금과 미래 노동이 기성세대의 안락한 노후를 지키는 데만 쓰인다고 느낀다. 집값·생활비는 뛰고, 일자리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군 복무는 ‘공동체를 지키는 의무’가 아니라, 국가가 청년층에게 일방적으로 짊어지게 하는 추가 부담처럼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애국심은 더 이상 감정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내 삶에 어떤 실질적 보상을 주는가”를 따지는 냉정한 계산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사실상 징병제 부활 시도, 설문지에서 거리 시위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병력난이 심해지자, 독일 정부는 2011년 없앴던 징병제를 우회적으로 되살리려 하고 있다. 올해부터 2008년생 남녀 약 70만 명에게 신체 조건·복무 의사를 묻는 설문지가 발송됐고, 특히 남성은 응답이 사실상 의무화되어 있다. 정부는 자원입대자에게 월 460만 원 상당 급여와 무료 운전면허 같은 ‘당근’을 내걸었지만, 거리에서 돌아온 응답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 국가를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구호였다. 많은 청년에게 이 제도는 ‘선택권 없는 동원’으로 보이고, 그 반발이 수만 명 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

병력은 늘리겠다지만, 숫자도 연령 구조도 모두 난맥상
독일군은 현재 약 18만 4천 명 수준이고, 정부는 2035년까지 26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연간 6만 명 이상이 새로 필요하지만, 당장 올해 목표인 2만 명 모집도 버거운 상황이다. 전역하는 인원을 겨우 메꾸는 수준이라 병력 구성은 점점 고령화되고, 부대의 활력과 혁신 능력은 떨어진다. 현대전은 드론·사이버·고급 장비 운용 등 청년층의 디지털 역량이 핵심인데, 젊은 세대가 군을 외면하면 재무장 계획 자체가 종이 위 숫자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
“차라리 점령당하겠다”는 말은, 실제로 러시아 군대를 환영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지금의 국가가 청년에게 제공하는 것과 청년에게 요구하는 희생 사이의 간극을 향한 냉소다. 안보라는 공공재가 청년 입장에선 피부에 닿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 되어 버린 반면, 연금 부담·취업난·주거 불안은 너무 현실적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아무리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외쳐도 그 말은 청년들에겐 공허하게 들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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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애국심을 살 수 있을까
독일 정부는 군 급여 인상, 복지·교육 혜택 등 경제적 인센티브로 청년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월급 인상’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높은 급여가 아니라, 군 복무 이후에도 이어질 안정된 삶의 경로, 세대 간 부담의 공정한 분담, 국가가 자신들을 동원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독일의 오늘, 다른 선진국의 내일일 수 있다
고령화·연금 부담·청년층 경제 불안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다수 선진국이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고, 유사한 안보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라”는 말이 설득력을 잃을 위험을 안고 있다. 독일에서 터져 나온 “전쟁터에서 죽느니 차라리 점령당하겠다”는 말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동시에 “이 국가가 정말 나를 지켜주고 있느냐”는 세대의 근본적인 의심이자 절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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