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범 국가에서 ‘무기 수출 국가’로
일본이 필리핀에 호위함뿐 아니라 지대함 미사일까지 넘기는 구상은, “전범 국가라서 무기 못 판다”던 과거에서 사실상 완전히 돌아섰다는 신호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헌법 9조와 각종 수출 금지 원칙 때문에 사실상 무기 수출이 봉인된 상태였다. 하지만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비살상·비전투용 장비부터 풀기 시작했고, 2024년 말 개정으로 60여 년 만에 살상 무기까지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필리핀 함정·미사일 수출은 그 새 규칙이 실제로 작동하는 첫 상징적 사례다.

발리카탄 훈련장서 바로 ‘홍보’한 88식 미사일
일본이 필리핀에 넘기려는 88식 지대함 유도탄(SSM-1)은 육상자위대 해안 방어용으로 운용해 온 대표적인 대함 미사일이다. 이번 미국·필리핀 주도의 ‘발리카탄’ 연합훈련에서 일본은 이 미사일로 루손섬 북부 연안에서 약 75km 떨어진 퇴역 군함을 실제로 침몰시키는 실사격을 보여줬다. 현장을 함께 지켜본 필리핀 국방장관이 “성능이 눈에 띄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사실상 실탄 시연이 곧 수출 상담으로 이어진 셈이 됐다. 일본 방위성은 어차피 이 미사일을 차기형으로 교체할 계획이라, 기존 물량을 그대로 동맹국에 넘기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는 중이다.

중고 호위함 + 지대함 미사일, 패키지로 들어간다
이미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중고 아부쿠마급 호위함을 필리핀에 넘기는 데 합의하고 실무 협상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육상자위대 88식 지대함 미사일까지 더해지면, 필리핀 입장에서는 해군·육상 해안 방어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패키지를 받는 셈이 된다. 남중국해·루손해협에서 중국 해군과 민병조직의 압박을 받는 필리핀으로서는, 미국·호주·일본의 장비 지원이 곧 “해양 영유권 방어의 안전망”이 된다. 일본에겐 첫 살상무기 수출 실적을 남기면서, 대중 견제 전선의 핵심 파트너 한 나라를 자기 편으로 더 단단히 묶는 효과가 있다.

‘평화헌법’은 그대로인데, 수출 규제는 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일본 헌법 9조는 그대로다. 다만 해석과 주변 법·지침이 수십 년 동안 조금씩 바뀌어 온 결과, 이제는 “전쟁을 안 한다”는 조항 아래에서도 상당한 군사력·무기 산업을 갖추고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은 비살상 장비 수출의 문을 열었고, 2024년 개정은 특정 조건 아래 살상 무기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이번 필리핀 사례는 그 변화 뒤에 있던 정치적 의도, 즉 “일본을 보통 국가 이상, 인도·태평양 안보의 핵심 무기 공급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난 장면이다.

중국을 향한 메시지, 한국에겐 압박과 기회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무기 수출은 단순히 양국만의 거래가 아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인근에서 중국의 해군·해경·민병선이 힘을 과시하는 가운데, 일본이 직접 무기와 함정을 공급하는 건 중국 입장에선 노골적인 포위망 강화로 보인다. 한국에게는 미묘한 압박이다. 한편으로는 일본이 무기 수출을 본격화하면서, 필리핀·동남아 시장에서 한국 방산과 직접 경쟁하는 상황이 더 자주 벌어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까지 나섰다”는 명분 덕분에, 한국도 인도·태평양 파트너들에게 무기·훈련 패키지를 더 적극적으로 제안할 명분이 생긴다.

‘전범국’ 이미지에서 빠져나오려는 장기 전략
결국 이번 행보는 일본이 2차대전 전범국 이미지에서 벗어나, “규범을 지키는 안보 제공자이자 첨단 무기 수출국”으로 자리 잡으려는 장기 전략의 연장선이다. 그 과정에서 평화헌법 해석은 계속 확장됐고, 방위산업은 ‘국내용’에서 ‘수출 가능한 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필리핀과의 첫 살상무기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같은 인도·태평양 연선에 있는 다른 나라들—예를 들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게도 일본산 무기가 더 적극적으로 제안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동남아 무기 시장과 역내 힘의 균형을 볼 때, “일본이 이제는 진짜로 무기를 파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을 전제로 계산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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