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3위였다가 당했다”는 우크라이나의 아이러니
소련 해체 직후 우크라이나는 전략 핵탄두 약 1900기, 수천 개의 전술핵, 176기의 ICBM을 가진 사실상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다. 러시아와 미국 다음 가는 핵 전력이었지만, 체르노빌 참사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강한 반핵 정서 속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이 책임 있고 문명국가다운 길”이라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하고 핵을 넘기는 대신, 영토 보전과 주권 존중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문서로 받았다. 그러나 그 ‘약속’이 실제 전쟁 앞에서 얼마나 얇은 종이였는지는 2014년과 2022년이 증명했다.

부다페스트 각서: 보장은 아니고, ‘확약’에 그쳤던 문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는 우크라이나·미국·영국·러시아가 서명한 정치적 합의였다. 핵심은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신, 세 강대국이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고, 무력을 사용하거나 위협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영어 원문에서 ‘보장(guarantee)’이 아니라 ‘확약(assurance)’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군사력 개입 의무, 자동 개입 조항 같은 구체적 책임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번역본에서는 ‘보장’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법적으로는 “침략이 일어나도 반드시 지켜준다”가 아니라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하겠다” 수준에 머문 셈이었다.

크림반도와 2022년 침공으로 사실상 찢겨진 각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병합하면서, 부다페스트 각서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무시됐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서 맺은 약속이 눈앞에서 깨지는 순간”이었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은 이 위반을 훨씬 더 노골적이고 파괴적인 규모로 확대시켰다. 그럼에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은 전면적 군사 개입 대신, 무기 지원·정보 지원·경제 제재라는 ‘간접 개입’에 머물렀다. 각서가 법적으로 강제력 있는 동맹 조약이 아니었던 만큼, 서방은 “우리는 정치적 약속은 지키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핵은 내놓았는데 목숨을 걸어 지켜주는 동맹도 없었다”는 냉혹한 결론만 남았다.

비핵화라는 ‘옳은 선택’이 왜 비극으로 돌아왔나
냉정히 보면, 1990년대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그 시대 기준으로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길을 택했다. 핵을 포기하고, 반핵·민주주의 국가 이미지를 받아들여 서방의 경제 지원과 국제적 인정에 기대는 전략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자체 핵무장 능력을 키울 여지도 있었지만, 내부에서 핵 보유를 강하게 주장한 세력은 소수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서방의 개입 피로감이 커지자 “핵을 포기한 대가가 오히려 침공”이라는 역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보장”이라는 말이 군사력 없는 국가에 무엇을,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트럼프식 ‘새 평화안’: 진짜 보장인가, 축소된 주권인가
최근 미국 특사가 푸틴과 논의 중이라는 평화안에는, 나토 제5조처럼 “다시 공격을 받으면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양만 보면 부다페스트 각서 때보다 훨씬 강한 약속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 영토 포기, 나토 비가입 약속, 병력 규모 제한 등 사실상 주권 일부를 영구 양도하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에는 진짜 군사적 보장을 줄 테니, 대신 영토·동맹 선택권은 포기하라”는 식의 거래는, 침략을 당한 국가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제안이다. 국제법적 정당성 논쟁도 여전히 뜨겁다.

우크라이나 사례가 한국과 세계에 던지는 질문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결정과 그 이후의 전개는, 핵 확산을 막고 싶어 하는 국제사회에도, 핵을 가진 나라·가질 수 있는 나라에도 모두 불편한 교훈을 남겼다. “핵을 포기하면 안전해진다”는 서사를 믿고 따른 결과가 침공과 영토 상실이라면, 누가 다음에 기꺼이 핵을 내려놓겠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북한이 더욱 강경하게 핵을 움켜쥐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 사례를 활용하고, 한국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자체 억지력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부다페스트 각서는 단지 한 나라의 문서가 아니라, “군사적 실력 없는 보장은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국제 안보 체계의 근본을 시험하는 사례가 되었고, 앞으로 어떤 형태의 안보 보장 약속을 설계하든 우크라이나의 경험을 피해 갈 수는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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