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타트 종료, 반세기 핵 통제의 ‘마지막 안전핀’이 빠졌다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공식 만료되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배치할 수 있는 전략 핵탄두·ICBM·SLBM·폭격기 수를 제한하던 마지막 제도적 장치가 사라졌다.
그동안 두 나라는 전략 핵탄두 1550기, 운반수단 700기라는 상한선 아래 상호 사찰과 통보를 통해 서로의 전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현장 검증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조약이 만료되며, 상대가 실제로 얼마나 배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이 지금의 전략 환경을 “냉전 이후 가장 예측 불가능한 국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제가 사라지면, 불신이 핵탄두 숫자를 밀어 올린다
군비 통제의 핵심 가치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상대가 어느 정도 갖고 있는지 서로 아는 상태’였다.
이 투명성이 깨지면, 각국은 상대가 숨어서 더 많이 배치하고 있을 수 있다는 최악의 가정을 전제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공격용 핵뿐 아니라 미사일방어(MD), 극초음속 무기 같은 대응 체계까지 경쟁적으로 키우게 된다.
결국 통제가 사라진 자리는, 상호 불신과 선제 증강 압박이 메우는 구조가 되고 만다.
미국의 계산: “중국을 빼고는 더 이상 못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뉴스타트 연장을 거부한 핵심 논리는 “중국이 빠진 2자 체제는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공식 입장과 달리 핵탄두 수량·탄두 생산 능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2030년 전후 1000~1500기 수준의 핵탄두 보유를 목표로 한다는 평가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미·러만 묶어 두는 조약은 미국 입장에서 불리하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3자 협정”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우리 규모는 미·러와 비교할 수 없다”며 참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의 ‘그림자 핵전력’, 왜 더 무섭게 느껴지는가
중국은 오랫동안 “최소 억지(minimum deterrence)”를 내세우며, 핵탄두 수량을 상대적으로 제한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하 사일로 건설, 플루토늄 생산시설 확충, 핵시설 지하화·방호 강화 정황 등이 잇달아 포착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여기에 소규모·저위력 핵실험 의혹까지 더해지며, “공개 숫자보다 훨씬 빠르게 핵전력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미·러와 달리 투명성·통보 체계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부에선 실제 전력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판을 더 넓히고 싶어 한다
러시아는 미국의 중국 참여 요구에 맞서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도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만 미국과 함께 묶이고, 유럽 핵보유국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남는 구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미국의 조약 종료를 명분 삼아, 신형 ICBM·극초음속 미사일·전략폭격기 전력 현대화를 ‘군사 기술적 대응’이란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협상 판은 복잡해졌고, 새로운 다자체제를 출발시킬 공통 분모를 찾기 더 어려워졌다.

제어되지 않는 미·러·중 삼각 군비 경쟁
지금의 구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누가 먼저 멈추기 두려운 치킨게임”에 가깝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며 핵·미사일방어·우주전력 현대화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핵전력을 “마지막 전략 자산이자 협상 카드”로 삼아 확대·현대화를 시도 중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 규모와 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탄두 수와 운반체·사일로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비통제협회(ACA) 같은 단체들은 이 삼각 구도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단순히 핵탄두 숫자 증가를 넘어 위기 시 오판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위험한 구조라고 경고한다.
사고·오경보·통신 장애 같은 작은 이벤트가, 상대의 ‘기습 핵공격’으로 오인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핵 경쟁 속에 낀 한국[글로벌 이슈/황인찬]|동아일보](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5/CP-2025-0398/image-d7d188fe-d866-466e-a96c-cef5661c40db.jpeg)
뉴스타트 만료는 조약 하나가 아니라 ‘질서 하나’가 끝난 것이다
뉴스타트 종료는 단지 문서 한 장이 효력을 잃은 사건이 아니다.
냉전 말기부터 이어져 온, “핵 대국들은 최소한 서로 어느 정도를 갖고 있는지 알고, 상한선을 합의한다”는 규범 자체가 무너진 사건이다.
이제는 강대국 지도자의 정치적 판단·국내 여론·경제 사정에 따라 핵전력 증강 속도와 방향이 결정되는, 규범보다 힘의 논리가 더 강한 시대로 들어섰다.
새로운 협상 틀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핵 보유국·우방·비보유국 모두가 더 높은 불확실성과 압박 속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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