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비틀 한 대, 그런데 지지율은 더 올랐던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2010년 우루과이 대통령으로 취임해 5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달고 살았다. 대통령 관저 대신 수도 외곽의 작은 집에서 살며, 20년이 넘은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출퇴근했다. 급여의 90%를 정당과 공공주택 사업 등에 기부하면서도 “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많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당선 때보다 퇴임 때가 더 높았고, 퇴임 시점에는 후임 대통령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기현상을 만들어 냈다.
![사진] 월급으로 재임 5년간 4억 기부한 우루과이 대통령 | 중앙일보](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5/CP-2025-0398/image-844953df-92fa-4f64-8a63-e4e114b91c07.jpeg)
“나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무히카는 자신에게 붙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을 “너무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며, 자신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어온 생활 방식을 권력자가 된 뒤에도 바꾸지 않았고, 이를 국민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그의 말은 소비와 소유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 현대 사회에 강한 대비를 이뤘다.

검소함만이 아니라, 성장·복지·개혁을 함께 이끈 지도자
무히카의 소박한 삶이 화제가 됐지만, 그가 남긴 성적표도 가볍지 않았다. 재임 기간 우루과이의 국내총생산은 크게 성장했고, 실업률은 역사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빈곤율은 40%대에서 10%대 초반으로 줄었다. 동시에 마리화나 합법화, 동성결혼 허용, 낙태법 제정 등 논쟁적인 사회 개혁을 추진하며 기존 질서에 균열을 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싸움은 빈곤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검소한 생활을 도덕적 상징으로만 소비하는 것을 경계하고 실제 제도 변화를 병행했다.
소비사회 비판으로 남은 리우 연설의 울림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 유엔 정상회의에서 무히카가 한 연설은 세계적으로 회자됐다. 그는 사람들이 오토바이와 자동차, 각종 소비재를 할부로 사기 위해 평생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게 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빚을 갚다가 인생이 거의 끝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는 구조를 비판하면서, 성장과 소비를 삶의 유일한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을 문제 삼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고, 선택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가난을 미화하는 게 아니라, 진짜 빈곤을 줄이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감옥에서 대통령까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 생애
무히카의 인생은 검소한 대통령을 넘어, 군사독재에 맞선 저항과 긴 수감 생활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그는 좌파 게릴라 조직 활동을 하다 체포돼 15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1985년 민주화 이후 석방된 뒤에는 좌파 정당 창당에 참여하고, 하원·상원 의원과 장관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인생은 아름답지만, 낡고 넘어질 때도 있다. 중요한 건 넘어질 때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려 했다.

퇴임 후에도 ‘현자’로 불리며 남긴 마지막 메시지
퇴임 이후에도 무히카는 국제 무대와 강연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며, 단순한 삶과 연대,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암 진단을 받고도 그는 “화가 나면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병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2025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보여준 인물로 기억됐다. 낡은 자동차 한 대와 작은 집, 그리고 “가난하지 않다, 단순하게 살 뿐이다”라는 한 문장이, 그가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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