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 봉쇄 뚫고 바다 위에서 기름을 넘긴 이란
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 인근 바다에서 이란 국기를 단 유조선이 다른 유조선에 바짝 붙어 선박 간 환적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항구를 통한 정상 수출이 막히자, 이란이 공해상에서 유조선끼리 직접 기름을 옮겨 싣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선박 간 환적(STS·Ship-to-Ship)은 항구에 입항하지 않고 화물을 옮겨 제재망을 피하는 대표적인 수법으로 꼽힌다. 북한이 공해상에서 석탄을 넘기던 방식과 구조가 거의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소 13척, 2,200만 배럴… 약 3조 원어치 원유가 움직였다
상업용 위성사진 분석 결과, 해상 봉쇄 이후 최소 13척의 유조선이 이런 STS 방식으로 이란산 원유를 넘긴 정황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6척은 이란 국기를 달았고, 나머지는 국적을 숨기거나 제3국 국기를 단 선박이었다. 이들이 옮긴 원유는 약 2,200만 배럴로 추산되는데, 현재 국제 유가를 기준으로 하면 약 20억 달러, 한화로 약 2조 9천억 원 규모에 이른다. 겉으로는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 물량이 ‘그림자 물류’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란산 원유의 은밀한 경유지, 리아우 해역
환적 활동이 집중된 곳은 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 인근 해역이다. 이 지역은 싱가포르와 가깝고, 중국과 이란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어 오래전부터 이란산 원유의 비공식 경유지로 활용돼 왔다. 리아우 해역에 머무르며 STS를 마친 원유의 상당 부분은 결국 동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90% 이상을 사들이는 최대 수요처로, 공식 제재와 별개로 백도어(backdoor) 거래의 중심축 역할을 해 왔다.

봉쇄로 막힌 건 ‘정상 항로’일 뿐, 유조선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백악관 설명대로라면, 미국의 봉쇄 이후 이란발 유조선 50척이 넘는 선박의 항해가 차단됐다. 공식 수출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봉쇄 이전에 이미 출항한 선박들이 공해상에 머물며 STS를 반복 시도하고 있고, 그 결과 리아우 해역에 쌓여 있던 이란산 원유 재고는 올해 초 약 9,000만 배럴에서 최근 4,2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봉쇄가 이란의 정상적인 수출 라인을 크게 옥죄고는 있지만, 비공식 경로를 통해 상당 물량이 여전히 시장으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CIA의 냉정한 결론, “3~4개월은 더 버틴다”
미 행정부는 대이란 해상 봉쇄로 이란 경제가 곧 붕괴할 것처럼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 중앙정보국(CIA)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봉쇄가 유지되더라도 이란이 최소 3~4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유통망과 내부 비축, 중국 등 우방국과의 거래를 통해 숨통을 틀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봉쇄 효과를 과장해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려는 백악관의 메시지와 달리, 정보당국의 평가는 훨씬 더 신중하고 냉정한 편이다.

‘원유 대란’ 속에서도 버티는 역설, 제재의 그늘에서 커지는 회색 거래
전 세계가 중동 전쟁과 공급 차질로 원유 확보에 애를 먹는 상황에서도, 이란은 제재 회피 수단을 총동원해 최소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석유를 여전히 팔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미국 주도의 제재와 봉쇄가 이란 경제를 압박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상 환적·무국적 선박·위장 국기 같은 회색 거래를 더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원유를 못 구해 고통받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식 환적 모델을 따라 3조 원 가까운 원유를 바다 위에서 조용히 나르며 버티고 있는 것이 이란의 현재 모습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