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지금의 아이유, 수지, 김유정, 장원영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은 존재감의 배우가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국민 여동생’이라는 원조로 불리던 배우가 있었는데요.
바로 임예진입니다.
지금은 드라마 속 유쾌한 엄마 역할이나
예능에서 털털한 매력을 보여주는 배우로 익숙하지만,
한때는 학생용 책받침과 수첩, 교복 광고를 휩쓸며
전국 남학생들의 로망으로 불렸던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죠.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고요?
1976년에는 연예인 수입 1위를 기록했을 정도입니다.
「파계」
임예진은 잡지 ‘여학생’의 표지 모델로 데뷔해 주목받았고,
이후 영화 「파계」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어린 비구니 역을 맡으며 과감하게 삭발까지 감행해
신인답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진짜진짜 잊지마」
이후 그녀의 인생을 바꾼 작품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덕화와 함께 출연한 「진짜 진짜」 시리즈였는데요.
이 작품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임예진은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올라섭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지금의 아이돌들이 광고와 화보를 휩쓰는 것처럼
임예진 역시 학생용품, 교복, 광고 시장을 장악했는데요.
그녀는 한 방송에서
“열여섯 살 때 광고 출연료가 집 한 채 값이었다”
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너무 너무 좋은 거야」
당시 광고 개런티가 무려 천만 원 수준이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그런 임예진이 영화계에
또 한 번 화제를 몰고 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출연료 두 배 요구 사건입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1977년 영화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서
쌍둥이 자매를 연기하게 된 임예진은
기존 60만 원이던 출연료 대신
1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쌍무지개 뜨는 언덕」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쌍둥이니까 두 사람 몫을 해야 한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당시 제작사는 결국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만큼 임예진이 아니면 안 되는 배우였던 셈인데요.
영화 포스터에도
“임예진이 쌍둥이가 되어 중앙극장에 오다!”
라는 문구가 크게 적힐 정도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 넘어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요.
너무 강렬했던 국민 여동생 이미지 때문인지
성인 역할을 맡아도 대중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이틴 스타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비판만 받으며 긴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배우 생활을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해요.
그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여정입니다.
「사랑과 진실」
윤여정은 임예진에게
“언제까지 사랑받는 주인공만 할 거냐”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조언했다고 하는데요.
이 말은 임예진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그는 조연과 단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배우로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박사네 사람들」
그렇게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쌓은 임예진은
훗날 김수현 작가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얼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신사와 아가씨」
청순하고 얌전한 이미지 대신
철부지 고모, 푼수 아줌마, 허당 캐릭터에도
열심히 도전한 것인데요.
특히 시트콤과 예능에서 보여준 반전 매력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원조 국민 여동생에서
믿고 보는 명품 조연으로.
임예진은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배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우무비 에디터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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