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흥미로운 ‘풍문’이 있다. 삼성전자의 초석이 원래 경기도 수원이 아닌,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고향 경남 의령이나 그룹의 모태인 대구에 놓일 뻔했다는 이른바 ‘반도체 텃세 전설’이다.
이 회장이 미래 산업을 이끌 반도체 공장을 고향에 지어 지역 경제를 일으키려 했으나, 의령 농민들의 거센 텃세에 부딪혔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조상 대대로 농사짓던 기름진 논밭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주민 90%가 반대하며 “반도체인지 뭔지 땅이나 지키겠다”며 투자를 문전박대했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괴담은 자연스럽게 대구로 이어진다. 고향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이 회장이 차선책으로 삼성그룹의 발상지인 대구로 공장 부지를 옮기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지역 민심 역시 “공해가 심해진다”, “농지가 사라진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깃발을 들며 텃세를 부렸다고 전해진다.
결국 갈 곳을 잃은 삼성 반도체와 전자 공장은 경기도 수원과 기흥 일대에 자리를 잡았고, 덤으로 자연농원(에버랜드)마저 용인에 터를 닦았다는 그럴싸한 전개가 완성된다.

호사가들이 이 풍문에 열광하는 이유는 엇갈린 지역의 운명 때문이다. 수원이 삼성과 함께 글로벌 거점 도시로 천지개벽하는 동안, 삼성을 걷어찼다고 알려진 의령은 재정 자립도 최하위권의 인구 소멸 위기 지역으로 전락했고, 대구 역시 과거의 경제적 영광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막대한 전력과 공업용수(초순수), 그리고 수도권 대학 출신의 고급 연구 인력이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산업이 당시 농촌인 의령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대구 역시 마찬가지다.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될 당시, 수원이 최종 낙점된 이유는 철저한 ‘수출’과 ‘물류’ 중심의 경제 논리였다.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뒤 수출해야 하는 당시 산업 구조상 수도권의 우수 인력 유치와 서울, 인천항, 부산항을 잇는 경부선 축의 수원이 최적의 입지였지, 시민들의 반대 때문에 쫓겨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의령의 실제 역사는 풍문과 정반대다. 의령군은 1990년대 산업단지 투자 타진부터 2021년 ‘이건희 기증관’ 유치전까지 삼성을 향해 끈질긴 구애를 펼쳐왔다.
비록 대규모 시설 유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현재 이병철 회장 생가 일대를 ‘부자 기운’을 받는 힐링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삼성을 걷어찬 텃세 마을이라는 오명과 달리,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삼성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온 의령군의 절박한 노력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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