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위라더니…” 하샴 가스전에서 처참히 무너진 바그너
2018년 2월 7일 밤,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즈조르 하샴(코노코) 가스전 인근에서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군과 러시아계 전력이 정면충돌했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과 시리아 친정부 민병대 500여 명이, 미군 델타포스·레인저 40명이 지키고 있던 가스전 초소를 공격했다가 4시간 만에 전차·장갑차와 함께 사실상 전멸한 사건이다. “세계 최강 용병”을 자처하던 바그너가 미군 특수부대를 상대로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돈 냄새 나는 코노코 가스전, 프리고진의 ‘도박’
전장이 된 코노코 가스전은 시리아 내 최대급 천연가스 시설로, 연간 10억 달러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황금 자산이었다. IS 격퇴 이후 시리아 정부군과 쿠르드 민병대(SDF),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던 미군이 서로 점유권을 놓고 팽팽히 맞서던 곳이다. 바그너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아사드 정권과 “탈환에 성공하면 가스전 수익의 25%를 떼어 주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사실상 ‘민간군사기업판 유전 전쟁’에 뛰어들었다. 러시아 국방부의 묵시적 승인, 나아가 공군·방공망의 지원을 계산에 넣은 도박이었다.

T-72 전차 27대 앞세운 밤 공격, 미군 40명이 맞선 상황
현지시간 밤 10시쯤, 바그너·시리아 친정부 연합 전력은 T-72 전차 20여 대와 자주포·장갑차, 박격포까지 동원해 코노코 가스전 방향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미군 측은 델타포스·레인저 등 특수부대 40명, 그리고 쿠르드 SDF 일부가 가스전 초소와 주변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다. 전차와 보병이 밀고 들어오는 교전 구도만 놓고 보면, 수적·화력 열세에 처한 미군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군 측은 즉시 공중지원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적 부대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미·러 간 ‘충돌 방지 핫라인’을 가동했다.
“우리 병력 아니다”라는 러시아 답변, 바그너의 치명적 오판
미군은 “전진 중인 부대가 러시아 정규군인지” 재차 질의했지만, 모스크바는 “우리 병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국제 분쟁 확대를 피하기 위한 ‘부인 가능성’ 확보였지만, 바그너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변수가 됐다. 그 전까지는 S-400 등 러시아 방공망 아래에서 미국 항공전력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 믿고 있었지만, 정작 러시아는 자국 정규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공망을 열어버린 셈이 됐다. 공중 우세를 완전히 장악한 미군 입장에선, 이제 정치적 부담 없이 원하는 만큼의 공중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매티스의 “전멸시켜라” 지시, 4시간 동안 쏟아진 공중 화력
당시 국방장관이던 제임스 매티스는 보고를 받은 뒤 “전멸하게 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F-22 스텔스 전투기, F-15E 스트라이크 이글, B-52 전략폭격기, AC-130 건십, AH-64 아파치 공격헬기까지 가용 전력이 차례로 투입됐다. 특수부대는 야시장비·적외선 조준 장비와 재블린 대전차미사일로 초반 공격을 버텨내고, 이어 들어온 공중전력은 무인기와 합쳐 일종의 ‘네트워크 살상 구역’을 만들었다. 약 4시간 동안 500발이 넘는 정밀탄·폭탄이 투하되며, 바그너 측 T-72 전차 27대와 장갑차 대부분이 파괴됐다.

결과: 바그너 100~300명 사상, 미군은 전원 무사
전투 후 집계된 피해는 일방적이었다. 바그너 및 동맹 세력은 최소 100명, 최대 300명 이상이 전사·중상으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다양한 출처가 전한다. 반면 미군 40명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생존자 증언에서는 하늘에서 끊임없이 탄이 떨어지고, 전차·차량이 하나씩 정밀 타격되어 파괴되는 광경을 “죽음의 회전목마”에 비유하기도 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 용병’을 자처하던 바그너가, 정규군 수준의 합동전·지휘통제·정보망을 갖춘 미 특수전 체계 앞에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러시아가 우리를 버렸다” 프리고진의 분노와 반란의 씨앗
이 사건 이후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와 총참모부 지휘부를 향해 공개 비난을 퍼부었다. 자신들이 러시아 국익을 위해 싸웠음에도 쇼이구 장관·게라시모프 총장이 방공망·공군 지원을 제공하지 않아 부하 수백 명이 몰살당했다는 주장이다. 이때부터 바그너와 러시아 군 수뇌부 사이의 불신과 적대감이 본격적으로 커졌고, 2023년 바그너가 모스크바를 향해 반란 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이 “버림받은 전투”가 반복 언급됐다. 사망자 수와 전투 경과를 취재하던 러시아 기자 키릴 로마노프스키가 5층에서 추락사한 사건까지 겹치며, 하샴 전투는 사실상 러시아 내부에서도 금기 주제가 됐다.

왜 이렇게까지 일방적이었나: “용병”과 “정규군 특수부대”의 차이
바그너는 전투 경험이 많은 전직 군인들을 모아 ‘세계 최강 PMC’를 자처했지만, 하샴 전투에서는 정규군 수준의 훈련·통신체계·지휘 통합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바그너측 공격은 T-72와 보병을 앞세운 과감한 정면 돌격에 가까웠지만, 각 제대 간 통신·정보 공유, 공군·방공과의 합동 계획이 사실상 없었다. 반면 미군 델타포스·레인저는 소수 병력으로도 야간·열상 센서, 재블린, 드론, 항공전력과의 링크-16 네트워크를 풀 가동해 ‘정보 우위+정밀 타격’을 최대한 활용했다. 결국 숫자와 화력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잘 연결되고 통제된 전력을 운용하느냐의 차이가 전투 양상을 갈랐다.

냉전 이후 미·러 첫 직접 교전, “핵 문턱 앞에서 멈춘 사건”
하샴 전투는 공식적으로는 미군과 ‘러시아 민간군사기업’의 충돌로 포장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군과 러시아가 직간접적으로 무력을 주고받은 첫 사례였다. 만약 러시아 측이 “우리 병력도 포함돼 있다”고 인정하고 대응에 나섰다면, 사소한 오판이 더 큰 군사 충돌로 번질 위험도 존재했다. 미국 측이 전투 내내 러시아 정규군과의 충돌을 피하려 신중히 통신을 유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전투는 미·러가 어디까지 힘을 쓰고, 어디에서 멈추는지에 대한 암묵적 레드라인을 시험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동시에, “40명이 500명을 꺾었다”는 상징적 숫자를 통해, 미 특수전 부대의 정보·화력 연동 능력이 다시 한 번 세계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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