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 원이 ‘무섭노’ 발언, 단순 사투리인가 혐오 발언인가?
최근 인기 아이돌 그룹 ‘리센느(RESCENE)’의 멤버 원이가 일상 브이로그에서 사용한 “무섭노”라는 단어가 온라인상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발언이 특정 커뮤니티의 혐오 표현과 연결된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로서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는 반박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과연 원이의 발언은 억울한 희생양이 된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해당 논란의 전말과 함께, 언어학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보며 진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무섭노’ 발언의 시작과 논란의 확산
리센느 원이의 “무섭노”라는 발언은 일상적인 브이로그 영상에서 카메라를 향해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곧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집단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혐오의 언어’로 낙인찍히면서, 순식간에 그룹 전체가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입니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일부에서는 원이의 발언을 ‘일베’ 용어와 연결하며 아이돌의 언어 사용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진실 규명보다는 자신들의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는 맹목적인 태도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섣부른 오해와 편견으로 한 사람의 언어를 재단하는 행위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릅니다.
사투리 전문가들의 반박: “무섭노는 의문형 종결어미가 맞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경상도 출신 전문가들과 방송인들은 “무섭노”가 경상도 사투리에서 의문형 종결어미로 사용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개그콘서트’의 ‘생활사투리’ 코너로 인기를 얻었던 코미디언 김시덕님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아무 생각 없이 사투리를 쓰면서 살다가 경상도 사투리로 돈을 벌기 시작하며 정말 많은 방언 관련 자료들과 책들을 찾아봤었다. 리센느 원이 님이 썼던 ‘무섭노’는 의문형 종결어미가 맞다. 언제부터 ‘-노’라는 사투리를 쓰면 일베로 몰아가는 분들이 있어서 ‘뭐라노, 와이카노, 일베 아이다’라고 대꾸를 했었다.”
김시덕님은 경상도 사투리 역시 지역별, 세대별로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며, 단어들이 잊혀지고 억양만 남아가는 현실 속에서 사투리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자산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언어학적, 지역적 맥락을 고려할 때, 단순히 ‘-노’라는 어미 하나만으로 혐오 표현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억까’ 논란에 편승한 정치권과 유명인들의 행태
이번 ‘무섭노’ 논란은 단순한 언어 해석의 차이를 넘어, 정치권과 일부 유명인들이 K-팝 문화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소 K-팝 산업에 대한 관심이나 창작자 권익 보호에는 소극적이었던 이들이, 누군가를 공격하고 화제성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돌을 이용한다는 지적입니다.
“K-팝의 눈부신 성취 뒤에 숨어,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을 위해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무책임한 관행은 이제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
이러한 ‘억지 논란(억까)’에 편승하는 행태는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K-팝 산업 전반의 건강한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섣부른 마녀사냥 대신, 존중과 이해의 자세를
물론 특정 커뮤니티의 혐오 의식을 근절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일베식 혐오 표현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지만, 그 잣대는 혐오가 발생하는 구조적 맹점을 짚어내는 깊이 있는 성찰이어야 합니다.
급상승 중인 인기 아이돌에게 얕고 표면적인 추정만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리센느 멤버들은 각자 고향인 거제, 수원, 경주, 고양 등 여러 지역의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룹이 전국 방방곡곡의 지역과 호흡하며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입니다.
섣부른 오해와 편견으로 사투리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 자산인 지역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결론: 아티스트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때
리센느 원이의 ‘무섭노’ 발언 논란은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현상의 역설적인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핑계로 아이돌을 함부로 난도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이돌은 대중의 결핍을 위로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이지, 정치적 논쟁의 샌드백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무대 위에서 땀 흘리는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날 선 사상 검증이 아닌,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서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성숙하고 따뜻한 시선입니다.
혐오를 근절하겠다는 명목하에 또 다른 혐오를 생산하며 아티스트를 소모품 취급하는 폭력적인 행태는 이제 우리 사회가 시급히 멈춰 세워야 할 것입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