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죽음 앞에서 누구나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례식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절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정이 없는 자식”이라고 쉽게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오랜 시간 쌓여온 관계와 감정이 눈물의 유무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는 살아생전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경우다.
함께 살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드물었고, 칭찬이나 위로보다 잔소리와 지적이 더 많았던 관계라면 부모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깊은 슬픔보다 공허함이 먼저 찾아올 수 있다.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표현할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오랫동안 부모를 돌보며 이미 여러 번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긴 병간호나 치매를 겪은 가족들은 부모를 조금씩 잃어가는 시간을 먼저 경험한다.
실제 임종을 맞이했을 때는 충격보다 “이제는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는 안도감이 앞서는 경우도 많다.
눈물이 없는 이유가 무정해서가 아니라, 이미 수없이 울었기 때문일 수 있다.

셋째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던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폭언이나 폭력, 무관심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부모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슬픔보다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미움과 원망, 안타까움이 뒤섞인 감정은 쉽게 눈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듯한 무감각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넷째는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울지 마라”, “강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슬퍼도 눈물을 참는 것이 익숙하다.
특히 장례식에서는 유족으로서 해야 할 일을 먼저 챙기느라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많이 우느냐가 사랑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고, 어떤 사람은 몇 달 뒤 부모가 즐겨 마시던 커피 한 잔을 보다가 갑자기 무너진다.
슬픔은 사람마다 찾아오는 방식도, 흘러가는 속도도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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