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위협에도 ‘버티는’ 스페인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스페인과의 무역을 끊겠다”고 공언했지만, 마드리드는 방위비와 이란 전쟁 문제에서 기존 입장을 거의 바꾸지 않고 있다. 스페인은 자신들을 “신뢰할 수 있는 나토 동맹국”이라고 규정하며,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것이 곧 동맹 충성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스페인을 “형편없는 동맹”이라 비난해도, 실제로는 양국 무역과 군사협력이 완전히 끊기지 않는 현실이 이들의 자신감의 배경이다. 압박의 언사와 실제 행동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방위비 5% 요구와 스페인의 ‘레드라인’
이번 갈등의 첫 축은 나토 방위비다.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이 GDP의 5%까지 국방비를 올려야 한다고 압박하며, 스페인의 ‘2%대 국방비’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이미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 2.1% 수준을 달성·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이 정도면 나토가 요구하는 군사 역량을 충분히 충족한다고 반박한다. 5%까지 올리면 사회복지·교육·공공 서비스에 치명적인 부담이 된다는 것이 산체스 정부의 논리다. 방위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 숫자 싸움이 아니라, 각국의 재정 우선순위와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대이란 전쟁 불개입, 로타·모론 기지의 의미
두 번째 축은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대한 협조 여부다. 스페인은 미국과 공동 사용하고 있는 로타 해군기지와 모론 공군기지를 이란 공격용으로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란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 항공기의 스페인 영공 통과까지 막으며, 자국 영토·영공이 국제법 논란이 큰 작전에 활용되는 것을 차단했다. 스페인 정부는 나토 집단방위 의무와,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 전쟁 참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즉, 튀르키예·동지중해 방어에는 기여하되, 이란 공격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트럼프의 ‘무역 단절’ 위협과 현실의 간극
트럼프는 이런 스페인의 태도에 분노를 표하며,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끊겠다”, “스페인산 상품을 더는 받고 싶지 않다”는 식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스페인 와인, 올리브유, 가공식품 등이 제재 후보로 거론되면서 일시적으로 시장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이 스페인만을 겨냥해 전면 금수 조치나 고율 관세를 실제로 부과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양국 간 상품·서비스 교역은 유지되고 있고, 미군의 스페인 내 기지 철수나 방위협정 파기 같은 극단 조치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말의 강도와 정책의 강도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EU라는 방패와 집단 협상력
스페인이 비교적 강하게 버틸 수 있는 핵심 이유는 유럽연합(EU)이라는 집단 틀 속에 있기 때문이다. 통상정책은 브뤼셀에서 EU 차원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이 스페인만 골라 제재하면 곧바로 EU–미국 간 대규모 통상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회원국도 트럼프의 이란 전쟁 확대와 과도한 방위비 인상 요구에 비판적이어서, 스페인만 ‘본보기’로 때리려면 미국도 상당한 외교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 같은 구조가 스페인에게 협상력과 정치적 여유를 제공해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사설]'국방비 GDP 5%' 반대한 스페인에 “관세 2배” 폭탄 던진 트럼프|동아일보](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7/CP-2025-0398/image-bf8ddb4f-053f-4c7a-9988-9f9fdda90b10.jpeg)
주권과 동맹 사이의 줄타기, 스페인의 선택
스페인 정부는 나토 의무와 자국 주권 사이에서 절충을 시도하는 노선을 택하고 있다. 한편으론 방위비를 높이고 나토 연합훈련·파병에 참여하면서 ‘책임 있는 동맹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한다. 동시에 이란 전쟁처럼 헌법·국제법적으로 논란이 큰 작전에는 자국 영토와 영공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앞세운다. 로타·모론 기지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완전한 거부 대신 제한·조건부 협력을 선택하면서 협상 공간도 남겨둔다. 이런 방식은 ‘동맹=전면 추종’이 아니라 ‘조건부 협력’이라는 모델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식 압박과 그 너머, 남는 메시지
흥미롭게도 나토 정상회의 막판에 트럼프의 발언은 다소 완화됐다. 스페인이 국방비 증가 계획과 나토 기여를 설명하자, 그는 “오늘 스페인은 매우 관대했다”, “많은 단합이 있었다”고 말하며 수위를 낮췄다. 협박과 칭찬이 뒤섞인 이런 언행은 동맹국들로 하여금 불안과 동시에 새로운 계산을 하게 만든다. 스페인 사례는, 미국 대통령이 “무역을 끊겠다”고 위협해도, 다자 동맹·경제 블록·국내 정치 기반을 바탕으로 자국 입장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 국가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걱정이 없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숫자에 의해 뒷받침될 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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