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라투 결말 보고
“이게 해피엔딩이야
새드엔딩이야?” 하고
멍하니 크레딧만
쳐다본 사람 많을 것이다.
결론부터 친절히
말해주겠다.
엘렌이 자기 몸을 미끼로
오를록 백작을 새벽까지
붙잡아 햇빛으로 태워
도시를 구하는 엔딩이다.
즉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자기희생 엔딩’.
근데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지금부터 하나씩
파헤쳐 보겠다.
1. 새벽까지 붙잡은
그 침대씬의 정체
넷플릭스로 다시 보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
엘렌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오를록을 자기 침실로
직접 불러들인다.
그리고 피를 빨리면서
“네”라고 답한다.
결혼 서약이다.
이 불경한 결혼을
스스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근데 이게 함정이다.
엘렌은 백작이 자기 피에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든 사이
일부러 시간을 끈다.
그리고 창밖으로
첫 햇살이 들어온다.
욕망에 취해 있던 오를록은
그대로 재가 되어버린다.
욕정이 곧 사망 원인이 된
셈이니, 이보다 더
블랙코미디 같은 최후가
또 있을까 싶다.
2. 감독이 숨겨둔
‘죽음과 소녀’ 코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을
르네상스 미술 모티프인
‘죽음과 소녀’로
그대로 재현했다고 밝혔다.
젊고 아름다운 소녀와
시체 같은 죽음이
한 침대에 엉켜 있는 구도.
삶과 죽음의 대비를
가장 극단적으로 그린
그림인 것이다.
여기서 음악쟁이로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4번의 별명이기도 하다.
로빈 캐롤런이 만든
저음 위주의 스코어가
계속 관객 심장을
짓누르는데, 이 영화의
공포는 절반이
‘소리’라고 봐도 된다.
3. 엘렌은 피해자인가
주인공인가
이 결말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 내내 엘렌은
“예민한 여자” 취급을
받으며 남자들에게
휘둘리기만 한다.
의사도, 남편도
그녀 말을 안 믿는다.
근데 정작 이 재앙을
끝낸 건 총도 십자가도
아닌 엘렌 본인의 선택이다.
✓ 스스로 미끼가 되기로 결심
✓ 스스로 결말의 시점을 결정
✓ 스스로 도시를 구원
자기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
그걸 무기로 바꿔버린
여자. 결말을 다시 보면
이건 비극이 아니라
엘렌의 승리 선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4. 넷플릭스로 볼 만해?
솔직 Q&A
Q. 무서운 공포영화야?
A. 점프 스케어는 거의 없다.
서서히 조여오는
고딕 호러에 가깝다.
심약자보단 분위기
좋아하는 사람용이다.
Q. 결말이 너무 찝찝한데?
A. 원작 자체가
그런 이야기다.
1922년 무성영화의
100년 된 뼈대를
거의 그대로 지켰다.
Q. 배우들 연기는?
A. 릴리로즈 뎁의
발작 연기와 빌 스카스가드의
목소리는 진심 소름이다.
빌럼 더포는 늘 하던 대로
든든하게 중심을 잡는다.
5. 소녀는 왜 창을 열었나
노스페라투 결말은
결국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쉽고 편한 길과,
힘들지만 옳은 길.
엘렌은 후자를 택했고
그 대가로 자기 목숨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 엔딩이
슬픈데도 이상하게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넷플릭스에 걸려 있는 지금,
꼭 밤에 불 끄고
이어폰 끼고 보시길 권한다.
그 저음이 방을 채우는 순간,
왜 이 영화가 그해
극장가를 뒤흔들었는지
바로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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