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0원짜리 물건으로 연 매출 4조 원에 육박하는 유통 제국을 건설한 남자가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해묵은 편견을 완벽히 깨부수고 대한민국 유통업계에 균일가 매장 신화를 쓴 주인공은 바로 아성다이소의 창업자 박정부 회장이다.
흔히 다이소를 일본 기업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실상은 45세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맨손으로 일군 순수 토종 기업이다.

박 회장은 전구 공장의 생산 책임자로 15년간 성실히 근무했으나, 회사 내 노사 갈등이 첨예해지자 마흔다섯이던 1988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먹여 살릴 가족이 있던 그는 배수의 진을 치고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가방 2개에 샘플을 꽉 채워 일본 전역을 홀로 돌아다녔으나 초기 수모는 처참했다.
바이어들에게 “무슨 이런 싸구려 제품을 가져오냐”라며 샘플을 내팽개쳐지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격 고민을 없애면 소비자가 자유롭게 지갑을 열 것이라는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주도해서 팔겠다”라고 다짐한 그는 1997년 서울 천호동에 15평짜리 1호점 매장을 열었다.
출범 직후 IMF 외환위기를 맞닥뜨렸으나, 싸고 좋은 물건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2001년에는 자금 확보와 독점 납품을 위해 일본 대창산업의 투자를 받아 사명을 ‘아성다이소’로 변경했다.
1,000원에 파는 박리다매 구조 탓에 마진율이 고작 ‘1%’ 대 내외에 불과해 주변에서 우려를 표했지만, 그는 품질과의 타협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현장 경영 중 “싸구려 최면 구기니 그냥 가자”라는 고객들의 날카로운 비난을 직접 들은 박 회장은 매장 인테리어를 세련되고 밝게 전면 개선하며 ‘싸구려 숍’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후 회사 자본금을 영끌해 1,200억 원을 투자한 자동화 물류센터가 초기 오류로 물류 대란을 겪으며 적자를 내는 위기도 맞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추운 겨울 창고에서 전 직원과 5개월간 맨몸으로 물건을 상하차하며 정면 돌파했다.
이후 급성장 가도를 달렸으나, 일본 지분으로 인한 경영권 압박과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되는 오명을 겪어야 했다.
결국 박 회장은 2023년 12월, 약 5,000억 원의 인수 자금을 투입해 일본 대창산업이 보유한 지분 34.21%를 전량 매입하며 100% 한국 자본 기업으로 완벽하게 독립했다.

아성다이소는 2025년 기준 매출 4조 5,363억 원, 영업이익 4,424억 원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소비 지도를 바꾼 독보적인 유통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싸구려라며 조롱받던 가장이 천 원 한 장의 가치에 평생을 바쳐 유통 제국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3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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