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회고 #커리어회고

1세대 작곡가
하광훈 선생님과의 만남
회사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음악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미련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음악이란 것, 내가 음악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10년동안 해온 음악을, 나의 꿈을 포기한다는 것이 한순간에 깨끗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틈이 날때마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다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기획사에 간간히 데모곡을 보내는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인터넷 능력을 동원하여 메일주소가 기재된 기획사 사이트라면 라면 가리지 않고 데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수많은 기획사 중 단 한군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차 데모곡 평가에서 합격을 하신 분들께만 전송되는 메일” 이라며 온 내용이었고 내부 소속 작곡가분들의 평가가 추가로 있으니 메일을 다시 보내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1차합격 후 2차 관문이 남아있다는 뜻이었죠. 신기했던 것은 이렇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음에도 연락이 실제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신인 작곡가들이 보낸 곡들을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들어보지도 않고 곧바로 휴지통으로 보내 버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니까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이제 정말 마음을 접자고 생각하며 다시한번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다시한번 답메일이 들어왔습니다.
“작곡가 하광훈이라고 합니다. 아직 프로로 일하기에는 조금 부족한듯 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는데요. 조금만 완성도를 높여서 들어보고 싶네요. 기회가 되면 차한잔 합시다. 계속해서 데모를 보내주세요.”
작곡가 하광훈과 변진섭
작곡가 하광훈. 그분은 우리나라의 80~90년대 대중음악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시절에 정점에 서계셨던 1세대 작곡가이십니다. 당시 변진섭, 조관우, 김범수 등 최고의 가수들에게 곡을 주셨던 작곡가.
이런분이 내 곡을 들어 주셨다? 심지어 나에게 메일까지 보내주고 가능성이 보인다는 표현을 해주셨다는 것에 저는 메일을 보고 심장이 뛰어서 진정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동안 내가 만들어 놓은 음악이 아주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구나, 그래도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궤도안에 들어 있구나 라고 생각되니 뭔가 위안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궁금한 것이 “작곡가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저 하광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작곡가가 되신 것인지도 너무 궁금했습니다. 이런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그냥 놓칠 수야 없었지요.
저는 차한잔 하자는 말씀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몇일 후 다시 메일로 답장을 보내 한번 뵙고 차한잔 하고싶다고 말씀드리니 전화번호를 남겨 주셨습니다. 몇 일간의 연락과 기다림 끝에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하광훈 작곡가님의 작업실에 방문을 하고야 맙니다.
TV에서 보시던 것과 다르게 실제로 만나 뵈니 포스가 대단하셨습니다. 저의 존경하는 마음때문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레전드 작곡가 이셨으니까요.
우선 저를 만나 주셨다는 사실 자체로도 감사했기에 감사인사부터 드렸고 “편하게 이야기 하다가 가라”고 하시며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날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정말 실질적이고 뼈에 새겨지는 조언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제 데모곡을 들어주시고 이렇게 한번 뵐 수 있는 시간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우선 이런 감사한 마음부터 전달을 했습니다. 이후 첫마디부터 선생님의 명언 퍼레이드가 시작되셨습니다.
“음…자네가 나와 이렇게 만났다는 건 작곡가가 되고 싶어하는 10,000명중에 1,000등 안에는 들었다는 이야기야. 하지만 작곡가가 되려면 그 1,000명중에 100등 안에는 들어야 하네.”
정말 너무도 정확한 저의 위치. 그렇습니다. 저는 그나마 1,000명에는 드는 수준까지는 올라왔으나 프로로 일하기 위한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100명안에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1,000명중에 100명…뒤로 900명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이지요.
프로로서 일할 수 있는 수준은 바로 만명중에 백명정도..아니 그보다 더욱 심할지도 모릅니다. 필드에서 일할 수 있기까지는 그만큼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작곡가로서 곡을
어떻게 팔 수 있는 것인가요?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고는
기회가 없는 것인가요?
그렇다고 작곡가를 모집한다는
어떠한 모집 공고조차 없습니다.
작곡가되는법은 도대체 뭔가요?”
과연 선생님의 시절에는 작곡가로 어떻게 데뷔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자네는 주변에 음악을 하는 친구가 몇이나 되나? 작곡가가 되려면 자네는 이미 그 세계에 들어가 있어야 하네. 지금 히트곡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자네의 주변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자네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이어야 해. 그 세계에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어야 내 곡을 홍보하고 팔 수 있는 기회를 얻는거야. 난 음악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변친구들이 많았고 내가 작곡을 한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곡을 쉽게 들려줄 수 있었다네.”
작곡가가 되려면 그 세계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곧 인간관계의 중요성.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실력 없는 사람들이 인맥 탓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팔아야 하는 비즈니스 적인 능력도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실력이 없어도 인맥으로 자신의 곡을 팔 수도 있는 것이 이쪽 일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실력이 있다면 인맥은 무시하고 집에서 혼자 열심히 곡을 만들어서 데모를 보내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실력을 가지지 못한 완성되지 않은 작곡가라면? 비즈니스를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곡만 몇십곡을 만들어 내봤자 그걸 들어줄 사람 한 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음악은 자신만 아는 음악이 될겁니다.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과 같이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포진되어 있을 겁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BTS의 작곡가가 될 것이고 어떤 친구는 경영 쪽으로 빠져 기획사에서 A&R을 담당할지도, 어떤 친구는 유명가수의 매니저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음악전공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빨리 집에 가서 곡을 쓸 생각만 했지 같은 학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함께 놀고 시간을 보내는 일을 무시했습니다. 지금 와서 주변을 보면 친하게 지내는 음악관련 친구들이 몇명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만큼의 기회를 잃은 것이지요.
이후에도 하광훈 선생님은 인맥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결과는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곡을 준비하는지 하루 중 몇시간을 작업에 투자하는지 등에 대해서 어떤 분의 사례까지 들어가며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선생님은 사실 저를 만나줄 아무런 이유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같이 일할 준비가 안된 사람이었고 만나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저라면 귀찮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음악에 있어서 간절한 어떤 후배를 위해 깊은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신 하광훈 선생님께 지금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이후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데모곡을 지속적으로 뽑아내지도 못했고, 최종적으로 기획사 소속 작곡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으며, 포기하지 않을 정말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가게 된 계기로 남았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인정이 거대한 위로가 되어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듭니다. 훗날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을 때,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힘이 되는 한마디를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도전의 성공
기획사에 데모를 제출하고 하광훈 작곡가님과의 만남을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처한 환경을 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열심히 음악에 매진하기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버리고 오히려 음악과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음악은 점점 내가 주력으로 열정을 다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날 때만 손을 뻗는 취미생활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몇번의 이직을 거치며 점점 회사생활의 경험과 연차가 쌓여갔고 음악을 하는 작곡가를 꿈꾸던 사람이 아닌 누가봐도 일반 직장인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지 못했던 음악은 저에게 전혀 생산성이 없는 가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있었고 열심히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회사업무는 너무나 공정하게 느껴지는 올바른 가치를 가진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내가 음악을 했던 그 시간들은 그냥 추억으로 남게 되는 구나.’
라고 생각되며 음악을 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아깝게 느껴지기 까지 했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음악을 했을 시간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꾸준한 경력을 쌓아왔을 텐데.’
라고 생각되며 패배주의에 젖어들엇고 음악이 미워지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음악에서 멀어지고 잊어가고 있을 때 간간히 치던 피아노마저 약 1년정도 치지도 않게 되며 완전히 음악을 놓으려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용하던 음악 장비들도 정리를 하고 이제 나에게 음악이란 것은 없다고 끝을 내려고 하던 시기에 우연하게 퍼블리싱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음악 퍼블리싱 회사는 그 전까지 알고는 있었으나 한번도 도전해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이 퍼블리싱회사를 알게 된 이후부터 몇 날 몇일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다시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말입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해볼까? 퍼블리싱 회사와 계약하는 것을 마지막 도전으로 생각하고 이게 안되면 정말 포기하자. 음악장비도 전부 정리하고 완전히 잊자. 더이상 마음의 방황을 하지말자’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좋은 노래를 단 한 곡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음악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정말 완벽한 포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미련이 남은 상태로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니고 노래를 만드는 것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회사를 다녔습니다.
저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미운오리새끼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도전의 승패에 따른다고 마음을 정리하니 한결 편해졌습니다.
퍼블리싱회사와 계약을 따내지 못한다면 나의 음악, 내가 만든 노래가 대중앞에까지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것이라는 객관적 판가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생각을 넘어 이것은 어느정도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후 마지막 도전을 위한 퍼블리싱회사에 제출할 곡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곡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밥만 먹고 곡작업을 시작하여 늦을 때는 새벽 3~4시까지 곡작업을 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잠은 3~4시간으로 줄였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 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곡의 퀄리티를 어느정도 수준에서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뽑아낼 수 있는 최상의 퀄리티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디테일하게 작업을 했고 그 결과 몇년동안 음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곡 중에 최상의 곡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더했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아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데모곡을 만들어내고 예전 기획사에 곡을 돌리던 때와 같이 음악 퍼블리싱 회사를 전부 써칭하여 데모곡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서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미련없이 떠날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이상 딴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 미운오리새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며, 회사일에만 열중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1~2주 후, 퍼블리싱 회사 두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중 한 회사의 담당자분과 만나 상세한 미팅을 가지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퍼블리싱회사와 5년의 계약을 맺었고 2026년 7월 현재까지도 계약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하는 다양한 가수들의 곡 의뢰를 받고 데모곡을 제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될 뻔한 저는 늦은 나이에 하이라이트, 폴킴, 트와이스 등 유명가수들은 물론이고 각종 드라마 OST에 곡을 넣어볼 수도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아쉽습니다. 10년만 빨리 알았더라면…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주변에 누구 하나 이런 퍼블리싱 회사에 곡을 제출해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 나갈지, 어떤식으로 스스로 개척해 나갈지라도 방향만 설정해 줬다면 어땠을까요. 방향만 알았다면 그 귀중한 시간들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었을까요. 저에게 여전히 음악은 N잡입니다. 음악에 올인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음악에 모든 것을 걸어 볼 수 있는 젊음과 꿈이 충만한 분들에게는 기회가 충분합니다. 만약 음악을 꿈꾸시는 분들이 이 글을 혹시라도 끝까지 읽으셨다면 절대 포기하시마시고 계속해서 도전해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꿈이란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모두의 회고”라는것을 통해 이렇게…아직도 무명작곡가로 남아있는 저의 삶을 돌아봤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커리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커리어는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다소 장황하고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기회에 제가 어떻게 이렇게 흘러왔는가 정리를 하게 되며 제 삶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모든분들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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