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조명과 수만 관객의 함성.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를 무대로 발자취를 남긴 가수 겸 배우 비(본명 정지훈)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언제나 거창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성공의 밑바닥에는 세상 가장 차갑고 아팠던 소년 시절의 기억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정지훈이 어린 시절 경험한 가난은 단순한 불우함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2000년대 초반 고등학생이자 연습생 신분이던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시련은 어머니의 병환이었다.
당시 그들의 집엔 “100원짜리 동전 하나 없어 밥을 숱하게 굶어야 했을 만큼” 극심한 생활고가 이어졌고, 당뇨병을 앓던 어머니는 제때 인슐린이나 기본 약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정지훈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주변의 문을 두드렸으나 어린 소년에게 돌아온 것은 냉정한 거절뿐이었다.
당시 10대 후반이던 그는 새벽에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약값을 마련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2000년 12월,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진짜 슬픔은 장례를 치른 뒤 찾아왔다. 집을 정리하던 정지훈은 텅 빈 방 안, 침대 아래(장판 밑)에서 낡은 통장 하나와 편지를 발견했다.
통장 속 금액은 어머니가 본인의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진통제조차 사 먹지 않고, 아들의 끼니와 미래를 위해 모아둔 마지막 유산이었다.
자신이 끊어낼 수 없었던 가난과 고통을 아들만큼은 겪지 않길 바랐던 어머니의 처절한 모성이 담겨 있던 셈이다. 당시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무너져 내리던 정지훈은 그 통장을 붙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보란 듯이 일어서겠다”는 피맺힌 다짐을 했다. 이후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연습에 매진했고, 이는 훗날 독보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 세계 무대를 누비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훗날 그는 방송을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끓여드린 미역국이 내 삶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며, 성공 후에도 지칠 때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경계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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