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의사 집안’ 하영 증조부 안상호,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 구연수 소개로 日 여성과 혼인… 학술 논문 재조명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이 방송을 통해 ‘4대째 의사 집안’ 가족사를 밝힌 뒤 증조부 고(故)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안상호가 일본인 여성과 혼인하는 과정에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조선인 가담자 구연수가 중매인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학술 연구 기록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제53호)에 게재된 이정은 당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최초의 근대 개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 유학 시절 도쿄에 체류 중이던 의친왕 이강의 저택을 드나들다 그곳에서 사무를 보던 일본인 여성 가와구치 이소코를 만났다. 논문에는 “두 사람 사이를 일본에서 망명하고 있던 구연수가 소개해 마침내 결혼하게 됐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안상호 부부의 혼인을 주선한 구연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일본 낭인 및 군인들의 궁궐 침입과 시해 과정에 협력한 대표적인 조선인 가담자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등재돼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99인’ 등에는 시해된 명성황후의 시신 소각을 감독한 인물로 서술돼 있다.
1899년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가 본국에 보낸 외교 문서에도 구연수는 “왕비 시해 사변 당시 일본인들과 함께 흉행한 자”로 기록됐다. 구연수는 을미사변 직후 일본으로 망명해 머물다 1907년 귀국해 일진회 평의원과 통감부·조선총독부 경무 관료를 지냈다. 대표적 매국노로 꼽히는 송병준의 사위이기도 하다.

학계에 따르면 당시 일제는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합을 뜻하는 ‘선부일처(鮮夫日妻)’를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적극 장려했다. 안상호는 과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전혀 못 먹는다”, “자녀들은 집에서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완전히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조선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근대 양의원을 개원한 인물로 알려졌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하고 이완용을 진료하는 등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혼인 배경까지 구체적인 문헌으로 확인되면서 관련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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