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증조부 업적에 얹혀갈까 20년 숨겼다”… 코요태 빽가, ‘독립운동가 후손’ 최초 고백

그룹 코요태의 멤버 빽가(본명 백성현)가 20년 넘는 연예계 활동 기간 동안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숨겨진 가족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자신의 외증조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했던 독립운동가 진희창(陳熙昌) 선생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연예계에서 불거진 친일파 후손 논란 및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열악한 생활고가 재조명되는 상황 속에서, 빽가의 진정성 있는 행보가 대중의 큰 울림을 얻고 있다.
빽가는 광복절인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이야기”라며 운을 뗐다. 그는 “함께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코요태 멤버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며 외증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오랫동안 침묵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께 ‘우리 집안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니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긍지를 가져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면서도 “외증조부님의 숭고한 업적에 내가 숟가락을 얹거나 기대어 가는 것처럼 비칠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빽가의 외증조부인 경림 진희창 선생(1874~?)은 1910년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상하이 현지에서 전차회사 감독으로 근무하며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온 독립투사들에게 비밀 거처와 활동 자금을 마련해 주며 독립운동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특히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기초가 된 상하이 임시의정원 회의에 의원으로 참여했으며, 백범 김구 선생의 회고록인 『백범일지』에도 어려운 시절 김구 선생의 식사와 거처를 챙겨준 조력자로 실명이 기록되어 있다. 1926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임시정부 경제후원회를 조직해 독립 자금 조달에 앞장섰다.
빽가가 20년 만에 침묵을 깨고 가족사를 공개한 배경에는 ‘나눔과 연대’의 의지가 있었다. 빽가는 “광복이 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독립운동가 후손분들 중 상당수가 심각한 생활고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그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 주변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계신다면 꼭 연락을 달라”고 전했다. 개인의 혈통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유공자 후손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한 창구로서 공개를 결심한 것이다.
이번 그의 고백은 최근 방송가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친일파 후손 논란과 맞물리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앞서 배우 하영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을 언급한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대정친목회) 활동 및 친일 매체 홍보 이력 등이 드러나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특히 하영이 과거 방송에서 “본가에 냉장고만 5대가 있고 음식이 안 먹어서 썩어 나간다”고 발언했던 장면이 재조명되면서, 국가보훈대상자 실태조사 기준 상당수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생계 곤란을 겪는 독립유공자 가문의 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공분을 샀다.
대중들은 대를 이어 부와 기득권을 누려온 일부 친일 후손의 과시적 태도와 달리, 조상의 희생을 묵묵히 가슴에 품고 살아온 데 이어 소외된 독립투사 후손들을 돕겠다고 나선 빽가의 진정성에 아낌없는 응원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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