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가요계는 혼성그룹의 황금기였다. 쿨, 룰라, 영턱스클럽 등이 차트를 휩쓸던 1997년, 강렬한 테크노 댄스 비트를 앞세워 데뷔한 4인조 혼성그룹 ‘스페이스 에이(Space A)’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가요사에 남긴 독보적인 기록은 비단 히트곡뿐만이 아니다. 데뷔 이후 해체와 재결성을 거치는 동안 그룹을 거쳐 간 정식 멤버만 총 14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가요계 역사상 가장 극심한 멤버 교체 잔혹사를 겪은 셈이다.

스페이스 에이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발매된 1집 타이틀곡 ‘주홍글씨’는 초기에 방송 무대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며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반전은 현장에서 일어났다. 이태원과 강남 일대의 나이트클럽 및 길거리 음반 매장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트클럽 신드롬에 힘입은 이들은 결국 지상파 음악 방송으로 역소환되며 화려한 역주행의 서막을 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1집에서 남성 보컬 및 코러스를 담당했던 정순원이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보컬리스트 ‘더원(The One)’으로 대성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팀 내 비주얼과 나이 균형을 맞추려는 기획사의 판단에 따라 1집 활동 종료 후 팀을 떠나야 했다.
1집 활동 직후 기획사는 평균 연령을 낮추고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멤버진을 대폭 개편했다.
1999년 선보인 2집은 스페이스 에이 최고의 전성기였다. 메인보컬 김현정의 시원한 고음과 중독성 있는 댄스 리듬이 어우러진 ‘성숙’에 이어, 후속곡 ‘섹시한 남자’가 연달아 큰 화제를 일으키며 지상파 음악방송 상위권을 휩쓸었다.
그러나 전성기의 기쁨도 잠시, 살인적인 행사 스케줄과 내부 갈등, 기획사와의 마찰로 인해 핵심 축이었던 김현정이 탈퇴하며 다시 무너졌다.
이후 스페이스 에이는 2.5집과 3집을 거치며 메인보컬을 안유진으로 교체하고 ‘바람난 남자’ 등의 곡을 선보였다. 보컬의 음색과 비주얼이 바뀔 때마다 라인업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래퍼와 서브보컬 자리는 기수마다 새로 채워졌다.
4집에 이르러서는 원년 멤버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총 14명의 멤버를 거친 끝에 결국 활동을 잠정 중단하게 되었다.

가요계에서는 스페이스 에이를 두고 “보컬리스트의 뛰어난 가창력과 확실한 콘셉트를 갖췄음에도, 당시 가요계의 고질적인 조급증과 기획사 중심의 멤버 교체 잔혹사가 만들어낸 비운의 그룹”이라고 평가한다.
비록 잦은 멤버 교체로 팀의 연속성은 흔들렸으나, 이들이 남긴 ‘섹시한 남자’와 ‘주홍글씨’는 지금도 90년대 댄스 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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