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디바 나미(본명 김덕화)에게는 무대 위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가슴 아픈 가족사가 존재한다.
파격적인 패션과 독보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시대를 풍미하며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자신이 직접 낳은 친아들을 무려 11년 동안 호적상 ‘친동생’으로 올려야만 했던 비극적인 사연이다.

사건의 발단은 나미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원한 친구’, ‘빙글빙글’, ‘슬픈 인연’, ‘인디안 인형처럼’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가요계 톱스타 반열에 올랐던 나미는 당시 소속사였던 삼호기획의 최봉호 대표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1984년 첫아들 최정철이 태어났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미혼 여가수의 임신과 출산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더욱이 최 대표와의 법적 혼인 관계 역시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상태였기에, 출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쏟아질 거센 비난과 함께 연예계 퇴출이라는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했다.
결국 언론의 집요한 추적과 세간의 시선을 피하고자 갓 태어난 아들을 나미 친정부모의 호적에 막내아들, 즉 나미의 남동생으로 입적시키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아들 최정철은 어린 시절 친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한 채 외할머니를 어머니로, 친어머니인 나미를 밖에서는 ‘누나’라 불러야 하는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나미 역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의 환호를 받는 순간에도 가슴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비밀과 자식을 품지 못하는 죄책감을 묻어둔 채 무대에 서야 했고, 모성애를 철저히 숨겨야만 했던 가슴 저린 나날이 길게 이어졌다.
비정상적으로 얽혀 있던 모자 관계는 11년의 세월이 흐른 1995년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최봉호 대표가 전처와의 법적 관계를 완전히 정리한 후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마쳤다.
이어 법원에 친생자 확인 및 호적 정정 절차를 밟으면서 최정철은 11년 만에 마침내 ‘남동생’이라는 굴레를 벗고 나미의 어엿한 ‘친아들’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후 최정철은 어머니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2002년 그룹 Q.O.Q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고, 이후 솔로 발라드 가수로 전향해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독자적인 음악 활동을 펼쳤다.
데뷔 초기에는 어머니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자 출생의 비밀을 철저히 숨기며 묵묵히 홀로서기에 나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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