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 도장 찍고 200억 빚더미?

대한민국 1세대 대표 여배우 선우용여는 23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인생 최대의 비극을 마주했다. 1969년 10살 연상의 사업가와 혼전 임신 상태로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 예식 당일 신랑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하객과 취재진이 가득 찬 식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는 남편이 금전 문제로 경찰서에 긴급 체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남편은 1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처럼 의지하던 누나의 사돈을 위해 거액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었다. 해당 지인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1750만 원이라는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자 연대 보증을 섰던 남편이 대신 구속당한 상황이었다. 당시 서울 시내 집 한 채 가격이 100만 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1750만 원은 집 18채를 살 수 있는 거액으로 현재 화폐 가치로는 200억 원에 달했다.
경찰서로 달려간 임신 4개월 차의 선우용여 앞에 채권자 측 여성이 나타나 서류 한 장을 불쑥 들이밀었다. 그 여성은 이 종이에 도장만 찍어주면 신랑과 지인을 당장 유치장에서 풀어주겠다고 집요하게 회유했다. 사리분별이 서투르고 결혼식을 무사히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에 휩싸였던 20대 여배우는 서류의 실체도 모른 채 덜컥 도장을 찍고 말았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남편은 아내를 보자마자 왜 함부로 도장을 찍었느냐며 거세게 화를 냈다. 그녀가 서명하고 날인한 문서는 단순한 석방 동의서가 아니라 남편의 거액 채무를 고스란히 떠안겠다는 잔혹한 연대보증 각서였다. 신혼의 단꿈을 꾸기도 전에 20대 젊은 여배우는 200억 원대 채무를 짊어진 벼랑 끝 빚쟁이로 전락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남편 소유의 공장과 사업체는 물론이고 2만2000평에 달하는 금싸라기 땅까지 모조리 압류당했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면서 18년에 걸친 지옥 같은 재판 싸움까지 시작되었다. 갓 결혼한 임산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사방에서 빚 독촉이 빗발치는 참담한 현실뿐이었다.
극심한 절망 속에서도 선우용여는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가장의 자리에 섰다. 그녀는 스스로를 화려한 스타 여배우가 아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계형 직장인으로 규정하며 태도를 바꿨다. 당장 몸을 뉠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수중에 남은 200만 원을 쥐고 분양 사무실로 찾아가 담판을 지으며 험난한 재기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선우용여는 빚을 갚기 위해 들어오는 모든 방송과 영화 스케줄을 거절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1979년 한 해에만 무려 8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수많은 드라마 촬영을 동시에 소화하며 살인적인 일정을 견뎠다. 첫아이를 출산한 뒤 몸조리는커녕 단 3일 만에 녹화 현장으로 복귀했고 산후 1달 만에 차가운 물속에 뛰어드는 투혼까지 발휘했다.
수많은 채권자들이 촬영장과 방송국 대기실까지 들이닥쳐 빚을 갚으라며 거세게 행패를 부려도 묵묵히 버텼다. 5일 밤낮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촬영장을 전전하다가 극심한 과로와 영양실조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빚을 갚겠다는 일념 하나로 10년 동안 쉼 없이 달린 끝에 마침내 200억 원대의 부채를 전액 청산했다.
이후 선우용여는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봉제공장과 미용실을 운영하고 파출부 일까지 하며 악착같이 생활을 이어갔다. 1989년 국내 연예계로 복귀한 뒤 1990년대 후반 국민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독보적인 코믹 연기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평생 쉼 없이 몸을 혹사한 대가로 방송 녹화 도중 말이 나오지 않고 팔이 마비되는 뇌경색이 찾아와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다행히 녹화장에 있던 의사의 빠른 대처로 골든타임을 지켜내며 뇌경색의 위기를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큰 병을 겪고 난 후 그녀는 비로소 남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50년을 해로했던 남편이 2014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홀로서기 방식을 배우며 한층 더 단단해졌다.
현재 80대를 바라보는 선우용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택에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호텔 조식을 즐기고 벤츠를 운전하며 밝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2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빚더미를 자신의 손으로 극복해 낸 그녀의 삶은 불굴의 생활력과 긍정의 힘을 증명한다.
선우용여의 딸 최연제는 1990년대 인기가수로 활동한 뒤 미국에서 한의사로 자리 잡아 모녀가 모두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젊은 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었지만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한 그녀의 뚝심은 여전히 회자된다.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찬란한 평온을 되찾은 대배우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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