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 하영, 日 증조모 정체까지 드러나 파문… “을미사변 가담자가 맺어준 혼맥”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을 둘러싸고, 그의 증조모 역시 일본 명문 정계 가문 출신이며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의 중매로 맺어진 혼맥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이 드러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구한말 국권 침탈의 핵심 배후 세력 및 을미사변 가담자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던 집안의 내력이 밝혀지면서 대중적 공분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1985년 출간된 정구충의 저서 ‘한국 의학의 개척자’ 등 사료 기록에 따르면,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의 아내이자 하영의 일본인 증조모의 이름은 가와구치 이소호(川口いそほ)로 확인됐다.
가와구치 이소호는 조선 침략과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일본 정계의 뿌리 깊은 실세 가문인 ‘모리가(毛利家)’ 공신의 딸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 상류층 여성들이 왕실 예법과 교양을 익히던 관습에 따라 일본 도쿄에 위치해 있던 대한제국 황실 ‘의친왕저’에 머물며 사무를 보던 인물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대목은 안상호와 가와구치 이소호의 혼인을 성사시킨 인물의 정체다. 두 사람의 결합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대표적 친일파 구연수(具然壽)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구연수는 을미사변에 적극 가담한 혐의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안상호와 가와구치 이소호는 결혼 후 조선 입국 당시에도 구연수의 자택에 머물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두 집안의 인연이 을미사변 주동자의 주선 아래 철저한 친일 인맥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앞서 하영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4대째 의사를 배출한 명문 가문”이라며 증조부를 언급했으나,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간부로 활동하고 친일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친일 행적이 낱낱이 공개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기에 을미사변 가담자와 일본 침략 세력의 핵심 가문이 얽힌 증조모의 정체와 혼맥 배경까지 추가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하영의 방송 활동 중단 및 차기작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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