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바라 시세이 작가 [숨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8/CP-2025-0262/image-45d2a08d-2898-4e24-9315-dc3514baefa2.jpeg)
이방인의 렌즈에 맺힌 분단국가의 고투와 비애
“지금도 긴장이 계속되는 분단국가의 고투, 그 때문에 민중에게 강요된 가혹한 고뇌와 비애가 보도 사진가의 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일본의 원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90)는 1960년대부터 청계천 빈민가, 동두천 기지촌, 베트남 파병, 민주화 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뼈아픈 궤적을 렌즈에 담아왔다. 그는 한국을 “사진 찍을 주제가 무궁무진한 보물 창고”라 정의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지켜본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격동은 이방인의 눈에 더욱 경이롭게 비쳤다. 그는 한국의 고도성장을 “한국인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의 결정체”라고 단언한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을 100여 차례 오가며 남긴 기록만 무려 10만 컷을 상회한다. 다큐멘터리 연출가 고희영 감독은 이 방대한 아카이브 속에서 작가의 치열한 삶과 철학을 발견했고, 이를 스크린에 영원히 각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 결실이 바로 다음 달 2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의 얼굴’이다.
시대의 금기를 넘어선 이방인의 특권적 시선
한국의 적나라한 민낯을 기록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60년대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인이 자신들의 남루한 일상을 촬영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구와바라 작가는 “늘 양해를 구하며 셔터를 눌렀다”고 회술한다. 그의 사진전에는 피사체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글이 항상 동반되었다.
청계천 판자촌 촬영 당시, 동행했던 한국 사진기자들은 “가난한 조국의 모습을 굳이 찍지 말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의 눈에 비친 판자촌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생명력 넘치고 풍요로워 보였다. 수십 년이 흘러 청계천의 옛 풍경이 빌딩 숲으로 대체된 후, 당시의 기자는 “그때 찍어두길 참 잘했다”며 뒤늦은 감사를 전했다.
미완의 통일과 스크린에 새겨진 잊힌 얼굴들
일본인이라는 신분은 때로 경계의 이유가 되었으나, 동시에 ‘시대의 억압’을 피해 가는 방패막이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 기자들이 중앙정보부의 삼엄한 감시 아래 자기검열을 강요받을 때, 외국인 신분이었던 그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역사의 현장을 누빌 수 있었다.
그의 오랜 숙원은 60여 년에 걸친 한국 기록의 마침표를 ‘남북통일’의 순간으로 장식하는 것이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셔터를 눌렀던 그는 “이제는 남북 간 사고방식과 경제 격차가 너무 벌어져 통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씁쓸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작품 ‘사진의 얼굴’은 지난해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고희영 감독은 “구와바라 시세이가 남긴 기록은 우리가 망각했던 ‘우리의 진짜 얼굴’“이라며, “단 한 장의 사진이 품고 있는 묵직한 힘을 스크린을 통해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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